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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May 24. 2021

세상이 나를 옭아맨다는 착각

페미니즘, GS25 사태, 비트코인, 민식이법 등등

 요즘의 인터넷과 뉴스는 하루가 잘 날 없이 시끄럽다. 원래 2년 전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면서 논란이 될만한 글은 최대한 지양하자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었다. 논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글은 아니나 누군가에겐 매우 불편한 논조와 이야기일 것이다. 그냥 답답해서 쓰는 넋두리라 봐주면 좋겠다.


 얼마 전 GS25의 광고에 '메갈리아'라는 급진적 레디컬 페미니즘 사이트의 손 모양이 들어갔다며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는 2015~16년도에 부상하던 레디컬 페미니즘 사이트가 맞다. 하지만 지금은 폐쇄된 지 오래이고(이것은 페미니즘 이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메갈리아'에서 파생되어서 나온 '워마드'라는 더욱 극단적인 사이트와 함께 흔히 말하는 퇴물이 된 곳이다. 아마 그쪽에서 활동하던 극단적인 사람들은 대개 트위터 등지로 옮겨간 것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 페미니즘 역사에서 가장 큰 갈림길이 된 촉매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이미 망한 사이트라는 거다.

 그런데 그 손 모양으로 이제 와서 갑자기 논란이 됐단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들여다봤는데, 그냥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집는' 손 모양이었다. 물론, 애초에 '메갈'이라는 사이트의 아이콘이던 손 모양이 그와 비슷하긴 하다. 그런데 저 '엄지와 검지로 집는다'는 행위 자체는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 아니었던가? 광고에 이미지로 있는 소시지를 집는 제스처이지 않나? 여기서 어떻게 하면 레디컬 페미니즘적인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이게 왜 논란인지?

 요즘 한창 인터넷에서 횡행하던 페미니즘 진영에 대한 비아냥, 조롱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또 저러다 말겠지 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GS25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사측에서 사과를 했단다. 사실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와 음해는 무시하고 넘기거나 고소, 고발로 명예훼손 처벌 절차를 밟으면 될 것을 사과까지 했다고? 결국 이는 황당무계한 음모론, 생떼를 사측에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렸고, 그 여파는 더 커지고 말았으며 대중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잣대를 온갖 콘텐츠에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다른 화제로 넘어가 본다. 올해 들어서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를 중심으로 가상화폐 투자에 대한 광풍이 불기 시작했고, 이는 2017~2018년도의 유행보다 훨씬 더 사회 전반적으로 퍼졌다. 주변에 가상화폐 투자를 하는 사람은 정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비트코인이니 이더리움이니 도지 코인이니 하는 이름은 이제 인터넷이랑 담쌓고 사는 노인 분들도 알 정도다.

어느새 가상화폐는 하나의 밈이 되었다


 애초에 지금의 2~30대에서는 투자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관찰되고는 했다. 이는 아마도(거의 확실히) 지금의 근로소득만으로는 폭등하는 부동산 시세 속에서 내 집을 온전히 마련할 수 없다는 생각, 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본인 또한 투자에는 아직 관심이 없더라도 이러한 불안감은 공유하고 있으니.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폭등의 원인을 제공한 현 정부와 여당에게 악감정을 품는 현상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지금의 과열된 투자 분위기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일론 머스크의 트윗으로 인해 가상화폐의 시세는 쉴 새 없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고, 결국에는 수많은 손실을 입은 사람들이 생겼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누군가가 많이 벌었다면 그만큼 잃은 사람 또한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제 이걸 가지고 정부에서 투자자 보호를 해달라며 외친다. 국민들을 보호해줄 수 있었는데 정부의 책임을 방기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왜 나왔냐 하니, 정부가 가상화폐 시세차익에 대해서 세금을 매기겠다고 하자 나온 이야기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사회구조와 체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결여되어있지 않는 이상에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정부는 2017년도부터 꾸준히 가상화폐는 위험자산이다, 자제해야 한다, 보호해줄 수 없다고 일관되게 이야기해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투자하고 돈을 넣은 건 결국 자기 자신의 책임 아닌가? 본인의 손실을 왜 국가가 보전해줘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생떼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갔고 몇십만 명의 사람들이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다른 화제로 또 넘어가서, 1~2년 전부터 화두였던 '민식이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 법의 취지는 당연하게도 아동들을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다. 정확한 법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스쿨존에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아동에게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운전자에게 가중처벌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사람이 몇백만 명 단위로 존재한다.

이 당연한 걸 반대한다니..

 대부분 말하는 논조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시속 30km 이하가 말이 되냐'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걸 무슨 수로 피하냐' '아이 책임이지 운전자 책임이 아니다' 등등. 여기서 그 사람들의 안일한 인식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아이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써 인식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책임소재를 따지고 있으며, 아이가 다치고 사망할 위험성보다 내가 빨리 운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사고가 났을 경우의 억울함을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요즘에는 아이들이 좌우를 살피지 못하고 뛰어나가는 영상을 보고 '민식이법 놀이'라고 하며(상식적으로 어린아이가 달려오는 차를 향해 죽을 각오를 하고 일부러 달려든다는 게 말이 되는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버젓이 공유한다.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생트집과 억지는 결국 세상이 나를 옭아맨다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여성들이, 사회가 페미니즘이라는 그릇된 사상을 동원해서 우리 남성들을 억압한다는 피해의식. 정부가, 기득권이 우리들이 투자로 돈을 벌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기 위해 가상화폐를 규제한다는 허상. 어린아이들이 우리한테 돈을 뜯어내고 피해를 끼치고 '엿먹이기' 위해서 스쿨존에서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다는 망상. 그래서 일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일베 로고를 방송 등에 몰래 삽입해왔듯이 페미니즘 진영에서 남성들을 조롱하고 억압하기 위해서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사이트의 로고를 홍보물에 삽입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투기행위에 대한 규제를 정부의 억압으로 포장하는 것이며, 어린아이들의 미숙함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 유무를 주장하는 것이다.


 진학이, 취업이, 결혼이 힘들고, 생업이 힘들고, 물가 상승은 가파른데 임금은 오르지 않고, 온갖 사람들과 24시간 내내 비교당하는 삶이 계속되고, 거기에 코로나까지. 현대 한국인들의 삶에 여유와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지 오래이다. 내가 취업이 되질 않으니 취업시장에서 불평등이 있다 생각하게 되고, 투자로 돈을 벌지 못하니 내 투자를 누군가가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니 서로에게 각박해지고, 내가 돈을 버는 것이 최우선이 되니 내 투자로 누군가가 돈을 잃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고, 내가 운전을 빨리 하지 못하는 것이 누군가의 고의적인 의도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 모두 힘든 시기이다. 이기적이게 될 수밖에 없고 감정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성인이라면 최소한의 상식과 논리는 갖추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작금의 상황은 집단적인 피해망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부끄러운 소리를 당당하게 내뱉는 사회가 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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