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무섭던 적이 있었나요?

그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by 이정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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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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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보내온 내 프로필 빈칸에 적어야 할 종교를 입력하라는 텍스트 창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기껏해야 한 줄의 문장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정신없이 흘러간 내 청춘의 모든 장면(Scene) 하나하나에

원하는 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발자국들이 역방향으로 나를 흘깃 돌아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밝혀본다. 아니 밝혀질 일도 없다.

우리 어머니 집안이 천주교를 믿으셨고, 어머니와 함께 외손자가 군 생활하는 부대까지 찾아오셨던 조금은

극성맞고 솔직히 본가 할머니보다 싫었던 우리 어머니의 친엄마이신 외할머니는 늘 손에 묵주를 감고 계시던 참으로 절실한 천주교 신자셨다.

본가 할머니는 이름을 불러주셨고 밥상을 차려주셨지만 아주 가끔 보는 외할머니는 늘 '우리 요셉이'였다. 군생활 이후엔 다신 뵙지 못했지만 지금도 외할머니의 독특한 체취와 나를 볼 때마다 촉촉이 젖으시던 눈가에 맺히시던 눈물의 의미를 지금은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난 유아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요셉'이다. 성당 친구들은 나더러 '요세바' 또는 '요셉아' 라고 불렀었지만 적어도 '성모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 할아버지를 그렇게 쉽게 부르는 건 아무 생각 없는 청춘에서는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다. 사실 18세끼리의 세례명 이야기는 연극의 주연과 조연을 가르는 듯 유치한 부심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이 50세가 됐다.

어디서 생긴 용기인지 갑자기 '내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기억해놨던 카페의 매물이 떠올랐다. '지금도 있으려나?' 전화를 하고 가서 만나보니 거기 젊은 여사장은 '다 내려놨어요'라고 한다. 이 말 한마디에 여사장이 차마 말 못 하지만 지나온 시간 냄새와 사람 냄새가 물씬 났다.

'사인할까요?'

내 말에 여사장이 '설마 하겠어?'라는 생각이었는지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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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병원 간, 기업과 기업 간, 개인과 기업 간 수많은 계약서와 MOU를 만들었던 내가 '갑' 또는 '을'자리에 내 이름이 들어간 공식적인 문서를 앞에 두고 사인을 하려니 파노라마가 또 흘러간다. 그냥 웃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라고 하는 내 경험에 다시 그냥 또 웃었다.

가게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술공방?' 너무 밋밋한데? 난 외국인들을 주로 상대할 건데? '오픈쿡?' 열린주방? 어때? 딱이네.

후이즈를 통해서 급 서치를 했다. 도메인이 .co.kr은 없고 .kr이 남았다. 이거네. 잡았다.

영문 도메인은 opencook.kr을 하고, 한글 이름은 '술공방'! 그런데 너무 술집 같은데? 술 만드는 공방?

너무 긴데? 그냥 '안산술공방'이라고 짓자. 1층에 내려와 담배 하나를 물었는데 길 건너 노란색 건물이 보였다. '4.16 단원고 기억 교실'이 내 눈앞에 있었다.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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