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애정했던 우리 할머니는 밤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을 부른다며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귀신은 없다며 웃는 내게 귀신이 안 나오면 뱀이라도 나온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는 휘파람과 귀신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인도에서 휘파람 소리와 비슷한 주파수가 나는 피리를 불며 코브라를 춤추게 하는 쇼와 한국의 휘파람, 뱀, 귀신의 연관 고리가 그어지는데 과학적으로 뱀은 청각이 발달하지 못한 대신 촉각이 발달해 있어 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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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를 통해 나오는 바람에 민감하게 반응해 공격하는 대상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꽈리를 튼 채 고개를 들어 공격적 동작을 취한다고 하기도 하고, 피리를 불기 전에 뱀이 들어있는 항아리를 발로 차는 진동에 반응해 대응하는 것일 뿐 낭만적 이게도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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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도 일부 외국에서는 예쁜 여자가 지나갈 때 남성들이 휘파람을 불며 관심을 유도한다. 이런 종류의 휘파람을 캣콜링(catcalling)이라고 한다. 이는 성적인 괴롭힘(harassment)에 해당된다. 카톡도 문자도 보낼 수 없던 시절 보수적이던 한국 사회에서 휘파람은 '남자가 여자를 희롱하거나', '외갓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아가 창문 아래에서 여자를 나오게 하는 신호를 보내는 방법'으로 쓰였기에 미혼이든 기혼이든 여자를 둔 집안에서 사전에 여자의 바람을 단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휘파람을 불길한 의미라고 프레임을 덮어씌운 것이라 짐작된다.
숫자 4에는 불길한 죽음의 의미가 있다.
숫자 "4"를 읽을 때 "사"라고 읽는다.
"사"가 "죽을 사(死)"와 같은 "죽음"의 단어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에 사용을 꺼려한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같은 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을 꺼려한다. 일본어는 4를 四라고 쓰고, 읽을 때는 '시'라고 읽는다.
일본어로 '죽는다'를 시누(死ぬ)라고 한다.
한국에만 이런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13일의 금요일'처럼 숫자 "13"을 불길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한국의 엘리베이터 층번호, 식당 테이블 번호, 아파트 동이름에서 숫자 4를 없앤다. 미국 엘리베이터는 12층에서 13층을 건너뛰고 14층으로 표시하고 한국의 엘리베이터는 실제로 4층을 나타내는 숫자 '4' 대신 문자 'F'를 사용하거나 바로 5로 표시한다.
빨간색 신발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선물에 깊은 의미를 넣기 때문에 주기 전, 받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칼과 같이 날카롭고 예리한 물건은 '그 사람과의 관계 끊기'를 의미한다. 숫자 4가 죽음을 상징하는 글자인 것처럼 과거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썼기에 살아있는 사람에게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 일은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거나 해를 입히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과거에는 호적에 고인의 이름을 적는 데 빨간 잉크를 사용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 일은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거나 해를 입히고 싶다는 것'
우리가 가장 무난하게 사용하는 색은 검은색이나 파란색이다. 비슷한 예로 밥그릇에 젓가락을 똑바로 세워 꽂는 것도 안된다. 이 행동은 장례식에서 향을 피우는 것과 유사하고 제사상에 놓인 밥그릇에 혼령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젓가락을 꼽는 것과 같이 죽음을 상징한다. 이 의식은 불교에서 나온 의식이고 불교가 국교인 다른 나라(티베트, 스리랑카,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중국, 일본 등)에도 같은 의미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멀리 도망간다'는 말이 있다. 연인들 사이에서는 신발 선물은 일종의 금기다. 나라마다 금기가 되는 선물은 다른데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에서 백합꽃은 '죽음'을 의미하기에 조심해야 하고, 중국은 우산(부정적 의미), 거북이(중국어 욕설과 비슷), 꽃다발(짧은 생명, 장례식장), 시계(끝남을 의미), 손수건(슬픔과 눈물의 의미)이 금기되는 선물이다. 일본은 칼이나 숫자 4와 관련된 선물이, 프랑스에서는 카네이션이 장례식장에 쓰이기 때문에 금기다.
미신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모든 나라, 모든 집안, 모든 지역, 모든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가 있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런 것처럼 포장된 상태의) 상호 신뢰, 집단 화합이 국뽕이라는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집단 화합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걸 '눈치'라는 단어라고 말한다.
'눈치'는 어쨌거나 본인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데 도움이 되지만 정도가 넘어서면 '실력이 없으니 눈치로 산다'거나 '본인의 개성이나 취향은 없고 상대방 비위만 맞추는 눈치만 있다.'라는 날선 평판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눈치'는 기본적으로 사회, 조직, 가정 내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많이 있어서도 그렇다고 없어서도 안 되는 눈치
난 영어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어는 말의 의사 전달보다는 상대방에게 '높임말'과 '예의'를 갖추느냐가 곧 '존중'의 의미가 되고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 앉은 식탁에서 언제나 아랫사람이 수저, 젓가락을 세팅해야 되고
윗사람이 퇴근하기 전까지 아랫사람은 업무가 끝났어도 앉아서 기다려야 하고
노래방에서는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탬버린을 들고 분위기를 띄우는 척을 해야 하고
주어진 일이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해야만 하고
직장인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가조차도 제한받는 부당한 처우에 대해 항의도 못하며
다면평가라는 평가로 수직, 수평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일'이 아닌 '다른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