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욱 교수 Apr 16. 2023

1995년. 인천 33번 시내버스 기사

야만의 시대

▼ NEXT
11. 예의가 없는 사람 ◀◀◀
12.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
13. 말이 앞서는 사람
14. 남의 노력을 비하하는 사람
15.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
16.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사람
17. 자신만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
18.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
19.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
20. 책임감 없는 사람


나는 귀농, 귀촌, 귀어에 관심이 많다.

나이 들어 관심이 생긴 게 아니라 20대부터 관심이 많았다.


관심이 생긴 계기는 시내버스기사 때문이다.


현금, 버스표, 토큰을 넣고 버스를 타던 시절이라 당연히 CCTV는 없던 시절, 인터넷도 없던 시절. 아침 7시 지옥철 지하철 1호선을 타기 위해 인천 제물포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몸을 겨우 밀어 넣고도 계단에서 한 발자국도 더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버스 기사는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안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댔고 버스 안의 사람들은 발 하나를 겨우 옮기기도 힘들어했다.


이어지는 버스 기사의 혼잣말이지만 혼잣말 같지 않던 욕설은 정류장에 설 때마다 반복됐고 커브길마다 거칠게 운전하는 버스 기사의 스트레스를 대부분의 여자 승객들은 숨죽여 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이때 항의하던 남자와 몇 마디 거친 언사가 오가더니 버스기사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어디 내릴 수 있나 보자!


아주경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처럼 운송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교육도 없던 시절이고 운전만 할 줄 알면 누구나 버스를 몰 수 있었기에 깡패인지 건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그때 느꼈던 생각은 '아~ 빨리 여기를 떠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때문인지 인천분들이 보면 서운하겠지만 지금도 소위 '마계인천'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다. 아니 인천뿐만 아니라 삭막한 도시생활 자체가 좋지 않았다. 그때부터 몸은 도시에 있지만 마음은 늘 시골을 그리워하고만 있다.


지금은 인천을 떠나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성남시 분당구에 산지 25년이 넘었다. 여기도 도시인지라 아파트 앞 집 사람과 10년이 넘도록 인사 한 번 나누지 않고 사는 삭막함은 같지만 풍부한 녹지와 넓은 도로, 자전거 도로, 여유 있는 공원과 쉼터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발전된 IT 기술 덕분에 30년 전처럼 욕설을 해대는 시내버스 기사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하나를 발견했다.

분당 1기 신도시, 중부일보
예의 없는 한국인


애를 키우다 보면 예외 없이 학부모가 되고, 학부모는 유치원, 초등학교 1, 2학년...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많은 학부모 모임을 참여한다. 주로 애엄마들이 참석하고 아빠들은 애엄마를 통해 이런저런 말을 들으며 우리 애와 친한 친구 아이의 식구 들와 왕래하며 어릴 땐 캠핑도 같이 가고 1박 2일로 먼 곳으로 여행도 다니며 애들의 우정에 숟가락을 두 개 얹고 아주 오랜 지인처럼 금방 친해진다. 아이를 가운데 두고 친해진 모임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뜸해지고 결국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남, 가끔 공원에서 마주치면 어색한 기운이 도는 그런 사이가 된다.


'OO이네 엄마 오랜만이네? 예전엔 죽고 못 살 것처럼 친하더니 왜 그래?'

'말도 하지 마, 전에 ◇◇이네 엄마 알지? 그 엄마랑 같이 △△엄마 험담해서 다 깨졌어'

'왜? 무슨 험담?'

SBS , 미세즈캅 2

사단은 이렇게 발생했다. 아이 등교를 시키고 단지 앞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작된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고, 비밀이 없는 현실 세계라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들어간 것이다.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치고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되니 자신에 대한 평가를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당사자는 얼마나 무례하고 기분이 나빴을까. 대체 지들이 뭘 얼마나 안다고!?


한국 사람들이 남 얘기 많이 하고,
남 평가하고 오지랖 부리는 건 사실이다.


한국인은 초면이라도 만나면 서열 정리를 빨리한다. 나이, 사회적 직위, 사는 곳, 사는 아파트, 학력 수준을 빠르게 파악해서 자기보다 나이 어리면 '내가 한참 위니 말 놓을게~'라고 정리한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데

'언제 봤다고 말 놔요?'라고 말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용기는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없다.

길 가다 어깨를 부딪혀도 사과하지 않는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자리를 찾아 파고든다. 10m 전에서 빈자리에 가방을 던진다. 주차장에서 남편이 주차한다며 자리를 맡기 위해 들어 눕는다. 숨을 헉헉대며 자전거를 타다 잠깐 물 마시는 틈에도 슬그머니 다가와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며 피곤하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최소한의 매너란 없다.

차선을 바꾸려고 깜빡이를 켜면 더 속도를 내고 몰아붙이는 운전매너, 남들이 있든 없든 스피커 폰을 틀어놓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통화한다. '너무 시끄러워요'라고 하면 가방에서 20cm 과도를 꺼내서 휘두른다(수인분당선 칼부림 사건) 아파트 단지 안의 자그마한 공원 벤치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먹는 학생한테 할머니들이 귀찮게 참견을 하고, TV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도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를 손가락에 돌돌 말아 한국 시장을 구경온 외국인 입에 쑤셔 넣고 깔깔댄다.



한국에 영어 강사로 취업했던 외국 여성이 한국에서 경험을 자국어 사이트에 적어놨다.


"많은 한국인들은 무엇이든 물어볼 것입니다. 당신의 고모할머니 베티가 묻지도 않을 질문들. 나는 한국에서 젊은 여성이자 명백히 외국인으로서 결혼 상태에 대해 특히 많은 질문을 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첫 주 또는 두 주 동안 수업을 알아가는 데 보냈습니다. 거의 어김없이 남학생들은 각 반에서 첫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결혼하셨어요?” 아니오라고 대답하자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이 외에도 내가 받은 다른 질문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선생님, 자녀가 있습니까?”
"선생님, 저 사람이 남자친구예요???"

“선생님, 해변에 비키니 입고 가세요?”

"선생님, 남자 친구가 식스팩을 가지고 있었나요?"


이 외국 여성은 이런 질문들을 무례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이해하며 마무리했지만


전체적인 글의 뉘앙스는 '무례'가 맞다.


오프라인에서 이 정도니 온라인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매너 없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깨달았다.



nursingcenter.com

'친밀함의 거리'는 45cm 이내,

'개인적인 거리'는 45~120cm,

'사회적인 거리'는 120~360cm,

'공적인 거리' 360cm 이상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인의 정(情)'으로 오지랖을 포장하지 말자. 정(情)은 초코파이 이름일 뿐이다.


매너(manner)가 좋으면 정(情)도 생긴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의학전문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reference image source:



작가의 이전글 칼을 든 남자, 피아노를 친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