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안나 마리아 벨루치
올해 나이 59세,
미국,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유럽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미녀,
모니카 안나 마리아 벨루치
(Monica Anna Maria Bellucc)
벨루치의 어머니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기적처럼 벨루치를 임신해 1964년에 출산했다.
벨루치의 아버지 루이지 벨루치는 포도, 딸기 같은 과일 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예술가로서 일을 하며 남편의 과일 농사일을 돕던 사람이었다.
10대가 되면서 온 마을에 소문이 날 정도로 벨루치의 뛰어난 미모가 빛나기 시작하면서
밖에 외출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정신줄을 놓고 쳐다보았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묘목을 사러 시장에 나가면 시장의 모든 사람들이 벨루치를 쳐다보는 바람에
일상의 생활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낯선 남자가 스폰서 제안을 하며 해외로 같이 나가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고,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식당에서는 사장의 서비스로 공짜로 식사를 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조차 벨루치의 미모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남자들은 다들 자기랑 잠을 잔 적이 있다고 말하며 허세를 떨었고
벨루치는 미모 때문에 원치 않았지만 이런저런 소문의 중심에 있었다.
벨루치는 말했다.
나는 남자들에겐 성적 대상이었고, 여자들한테는 창녀였다.
일상의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관심은 나이 어린 벨루치한텐 무척 부담스러웠나보다.
이런 부담감에 벨루치는 남자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고, 일부러 조금의 노출도 보이지
않도록 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일부러 피해 다녔다.
벨루치의 부모님은 어린 벨루치의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좋은 방향으로 격려했다.
우연히 지나가는 헤어 드래서이자 아버지의 친구였던 피에로 몬타누치의 차를 얻어 탄 것을 계기로
아마추어 사진 모델을 시작했고 모델일과 피자 가게 서빙일로 변호사가 꿈이었던 벨루치는 페루자 대학교에서 학비를 벌었다.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촬영한
유명한 잡지 '엘르 프랑스', '보그 스페인'의 표지에 벨루치의 사진이 실리면서
19살에 모델 에이전시(피에로 피아치)와 계약을 하면서 밀라노로 입성했다.
정식 모델이 되면서 벨루치는 미모 하나로 밀라노, 파리, 뉴욕에서 일 순위 지명되는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벨루치가 영화에 처음 데뷔했을 때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역할만 맡았다.
급여는 적었고 감독들은 예쁘기만 한 벨루치한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드라큘라'에서 신부 역할을 통해 주목받으면서
여러 영화들에 출연했고 1996년 모니카 벨루치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돈을 많이 받는 여배우가 되었다.
벨루치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수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멋진 말들을 많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사랑'에 대한 정의를 심플하고 덤덤하게 설명한
그녀의 이 말은 엄청난 미모를 갖고 태어나서 모델로써 배우로서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벨루치의 감정이 담긴 바로 이 말이다.
사람 사이에는 상호 자유와 존중이 있을 때에만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싶어 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응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