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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Sep 04. 2022

수술실, CCTV에

없다고?

5년 전인가?

바이오 회사를 다니는 L박사와 술 한 잔 하면서 들은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사람의 혈액이나 타액(DNA 추출)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많이 한다. 

주로 아주 작은 양의 액체를 옮기는 데 쓰이는 실험 도구 '피펫(pipette)'을 이용해 

수작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구가 좋더라도 손으로 하는 거라 실험실의 온, 습도나 

공기 중 미생물 오염, 시료의 변질 등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실험 결과를 뽑을 때까지는 다양한 변수가 있다.

(이러한 변수 컨트롤을 잘하는 것이 실력 좋은 연구자로 인정받는다.)


https://lmg-labmanager.s3.amazonaws.com


혹시 이 문제 때문인가?


혹시 이 문제 때문인가? 

잠들기 전까지 고민하며 그 부분을 수정하고 다시 실험을 하는 인간 삶에서 초월한 단계의 

정신적 해탈을 할 정도로 그 일은 무척 고된 일이다. 

때론 특정 균으로 오염시킨 혈액에서 균주의 증식 타이밍을 기다리며 배양 접시(샤알레)를 지켜보다 

뜬 눈으로 하룻밤을 꼬박 새기도 한다. 

이렇듯 바이오 연구 분야의 일은 특성상 퇴근 시간을 맞춰서 일하기가 어렵다.




어느 금요일 오후, 

L 박사가 참석한 회의에서 바이오 회사 대표가 M 팀장에게 물었다.

'실험 결과가 왜 빨리 안 나오는 건가?'

'이전 실험에서 나온 결과를 똑같이 재현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재현이 

잘되지 않습니다.'라고 M 팀장은 대답했다.

대표는 '지난 회의 때는 나왔다면서? 왜 안 되는 거야!'라고 다그쳤고 

스트레스가 쌓였던 M 팀장은 발끈하며 

'저희가 기계는 아니잖습니까?'라고 해서 분위기가 식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사람이니깐 착각도 하고 오류를 일으킨다. 

손에 쥔 볼펜을 떨어트리는 작은 실수부터 원자력 발전소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는 실수까지 

모든 게 '사람'이기에 하는 실수들이다.


며칠 전 술 공방에 전시돼있던 술을 만들면 딱 1병씩만 보관해오던 

오래된 술병들이 모두 떨어져 깨지는 대형 사건이 있었다.

선반 볼트가 헐거운 것을 개의치 않았던 내 실수였다.

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공구를 찾아 피스 작업을 다시 하고

칼블럭을 끼워 맞추는 그 과정의 번거로움이 귀찮아서 차일피일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조심스레 깨진 술 병을 치우고

사방에 튀긴 술들을 닦아내고 유리 쓰레기를 비우며

게으른 나 자신을 구박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술 공방을 하다 보면
술 병이 떨어질 때도 있는 거지!

방앗간을 하면 쌀을 엎지를 경우가 있다.

운전을 하면 접촉사고가 나기도 한다.

시험 볼 때 아는 문제를 틀리기도 한다.

덧셈이나 뺄셈을 잘못하기도 하고 구구단이 기억 안 날 때도 있다.

누구나 처음 요리를 하다가 손을 다치기도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진 사람 몸이라는 시스템은 치명적인 실수를 기억하고 있다가

같은 상황이 되면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술실을 나온 의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수술이 잘 끝났것인지 아닌지 판단은 누가 하지?

본인이 한 수술에 대해 본인 입으로 결과를 말해야 한다면 항상 '긍정적 결과'만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가 발생 시 '객관적 사실'에 대해 늘 궁금해한다.

사람은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기억을 조작하거나 왜곡시키는 '인지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운행하고 다니면서도 '사고'가 발생 시 '객관적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자동차 블박(블랙박스)이나 근처의 CCTV 뿐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발생한 끔찍한 아동학대를 CCTV가 잡아내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사고의 진실을 CCTV가 잡아내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수술실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의료법 개정안 


시행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실 CCTV를 Off 할 수 있는 '촬영 거부(예외) 사유'가 어이없다.


'위험도'

'적극적 조치'

'지체 시 위험해질 수 있는 경우'

'전공의 수련,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


판단력을 흐리는 단어
'현저히'


숨길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

떳떳하다면 책임질 수 있다면 반대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CCTV를 통한 책임 판별의 범위를 벗어나고자 하는 얄팍한 꼼수가 보인다.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을 의료 과실로 숨지게 한 강OO 의사는 지금까지 

의료 사고로만 3번째 기소가 됐다.

그렇지만 3년 후에 다시 칼을 들 수 있게 된다.


법을 입법하는 사람들(국회의원)과 마치 한 여름 깊은 숲 속의 덩굴처럼 

그들과 엉켜있는 이익 집단과의 공존 관계가 투명해야 할 대한민국을 뿌옇게 만들고 있다.


이상적인 깨끗한 나라, 

살아생전에 볼 수 있을까 싶다.


고구마 주 덧술 고두밥을 찐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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