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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Feb 11. 2024

웰치 포도 주스의 비밀

포도주스와 와인의 아슬아슬한 경계 

1800년대 교회는 딜레마에 빠졌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알코올 중독을 막기 위해 1800년대에 금주 운동이 시작되었다.

금주운동 분위기에서도 교회는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의식에서 어쩔 수 없이 포도주를 사용했다.


포도주를 대신해서 포도주스를 마셨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1800년대에는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13년까지 가정용 냉장고가 없던 시절,

실온에 보관된 생 포도 주스는 자연적으로 와인으로 발효되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주중에 포도즙을 짜서 발효되기 전에 주스로 마시는 것이었지만 

모든 교회에서 주중에 포도를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어떤 교회에서는 발효되지 않은 성찬 포도주를 직접 만들었고

어떤 교회에서는 포도주 대신 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계속해서 포도주를 사용했다.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포도주가 발효되지 않은 것이냐 발효된 것이냐를 가지고 논하는 


포도주 논쟁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1864년 감리교회 총회는 “주의 만찬을 거행할 때 순수한 포도즙을 사용하라”는 금주위원회의 보고서를
승인했다.


4년 후, 토마스 웰치(Thomas B. Welch) 박사는 Vineland (뉴저지) 감리교 성공회의 

성찬지기가 되면서, 자신이 꼭 신자들에게 발효되지 않은 성찬 포도주를 제공하겠다고 맹세했다.


항상 과학에 관심이 있었던 Welch는 루이 파스퇴르의 기술이 포도 주스에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웰치는 주스가 발효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마침내, 1869년 토마스 웰치는 주방에서 주스 저온살균 공정으로 무알콜 포도주스를 만들었다.


웰치가 만든 "Dr. Welch's Unfermented Wine”은 성찬식 대신 

무알코올 대체품을 선호하는 교회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Welch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무알콜 포도주스 생산을 포기했다.


2년 후, 웰치의 아들 찰스(Charles)의 설득에 웰치는 다시 무알콜 포도주스를 생산했고

아들 찰스는 여러 교회에 성찬용 포도주 대용품 무료 샘플을 제공했다. 

이때와 거의 동시에, 알코올 절제 운동에 탄력을 받은 웰치의 사업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웰치 아들 찰스 웰치(Charles Welch)는 교회라는 시장을 넘어 포도 주스를 치료약으로까지

판매하기 시작했다. 포도가 가진 건강 기능으로써의 용도를 광고에 사용했다.

웰치 포도주스가

장티푸스, 폐렴 및 "당뇨병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만성 질환"에 좋다고 

허위과장(?) 광고를 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가능했다.


찰스 웰치가 1893년 시카고 세계 전시회에서 웰치 포도주스를 선보이면서 

웰치 포도주스(Welch's Grape Juice)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음료'로 등극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음료'로 등극했다.


아버지가 교회를 사랑하는 과학자였다면

아들은 마케팅을 잘하는 사업가였다.


그렇게 웰치스(Welch's)는 포도주스뿐만 아니라 

여러 과일 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항상 기회가 온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뒷머리가 없다고 한다.

지나고 나서 잡을 수가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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