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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Sep 10. 2022

약 먹는 경찰

PTSD

J와는 같은 연구실에 있었다.


J는 남자가 봐도 키도 훤칠하게 크고 얼굴도 잘생긴 데다가 공부도 잘했다.

게다가 완벽하게 인성까지 좋았다.

J는 학생이고 나는 교수였지만 J는 인간적으로 참 멋진 친구였다.


J는 교수님들의 추천을 받아

코스닥 상장업체인 경기도 광주의 G사에 연구실 동기 두 명과 함께 취업을 했다.


회사 생활이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들렸지만 녹녹지 않은 첫 사회생활을 하려니

힘든 건 견뎌내야지 않겠냐는 정도의 말만 건네주고 내 생활에 치여 잠시 잊고 지냈다.


조그만 펜션 하나를 빌려 1년에 한 번씩 하는 연구실 모임에서 J의 소식을 들었다.


G사가 갑자기 구조 조정을 하게 되었고

회사 근속연수가 짧은 사람 순으로 정리 해고를 했다고 했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구조 조정은 J를 포함해 함께 취업한 동기들도 모두 다 구조 조정 대상에 포함시켰다.


구조 조정 대상


마음이 아팠다.

다른 무엇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이

겪는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우울하고 충격이었을 걸 알기에 교수로서, 어른으로서

기분이 좋지 않고 미안했다.


그 회사 입장에서도 피치 못할 경영상의 문제도 있었을 거라는 걸 알기에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고 마음만 답답했다.


소식이 끊어졌다.


J는 그 이후로 전화번호도 바뀌면서 소식이 끊어졌다.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J였다.


'교수님, 잘 계셨어요?'

'아이고 J 아니냐? 그동안 어디 있었니?'

'맥주 한 잔 사주세요 교수님. 얼굴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승역 근처 닭튀김 냄새가 달콤한 치킨집에서 J를 만났다.

J는 경찰 시험을 준비했었다고 한다.

1차 시험에 합격하고서야 연락을 한다고 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고생 많았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전화번호도 바꾸고

죽은 듯이 시험공부만 했다고 한다.

잘했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우리가 미안하다고.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J와 함께 마시는 시원한 맥주로  여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J는 서울 근처 OO지구대에서 근무했다.

그렇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몇 년의 시간이 훌쩍 흐르고 J를 다시 만나서 한 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까칠한 얼굴로 다시 본 J에게 물었다.


경찰 생활은 어떠니?


좋지 않다고 했다.

거의 매일 주취자(술에 취한 사람) 난동, 가폭자(가정 폭력자) 난동, 자살자, 폭행자, 처참한 교통사고,

조폭 칼부림과 같은 사건들을 접하고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에 깨진 신체 리듬과 늘 긴장상태의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자신이 수면장애, 불면증, 강박증,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소방관들이 겪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직업군들이 겪는 질환이라고 했다.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다고 했다.


J는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약물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음악을 틀어놓고

깊은 명상을 한다고 했다.

명상을 한 뒤부터 두근거리고 긴장되는 마음이 가라앉고,

승진에 대한 욕심, 돈에 대한 욕심들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J가 받았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이기에 또 한 가정의 가장이기에 부모님께는 아들이기에

그렇게라도 견디고 있는 J가 너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특정 직업군의 공무원을 충분하게 보호해주지 못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J가 얼마나 더 경찰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하는 동안 부디 아무 탈없이 몸과 정신 모두 건강하게

잘 보살피며 마무리하게 되기를 아끼는 선생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J야. 내가 신경 더 써줄게. 미안하다.

이번 달 말쯤 지나는 길에 들러서 술 하나 가지고 가라.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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