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후에 돌아온 자식
앞 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이나 지났다.
할아버지는 혼자 사셨다.
미국에서 아들, 딸과 같이 지내는 할머니가 1년에 한 번쯤 혼자 들어와
1주일 정도 머물다가 미국으로 돌아가고는 했었다.
가끔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만나면 미안하다 말씀하시면서
혹시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 있으면 당신에게 연락 좀 부탁한다면서
장 봐온 먹을거리를 나눠주고는 하셨다.
할아버지는 건강도 좋지 않아 보였다.
할머니 말로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 만나는 나를 보고 또렷하고 번쩍이는 눈빛으로
하시는 말씀엔 강한 힘(force)이 살아 있었고,
느리지만 거동은 가능해서 어디를 다녀오시는지 가끔 퇴근하는 나와
같은 버스에서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증상은 점 점 눈에 띄게 악화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파킨슨병 초기 증세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느린 움직임, 무표정한 얼굴, 균형 장애로 지팡이로 보조 보행을 하셨고,
인지 장애도 있으신지 한 밤 중에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는지
가끔 새벽에 119와 경찰이 앞 집 문을 쿵쿵쿵 두들기며 '움직일 수 있으세요?'라고 묻는
통에 잠을 설친 적도 몇 번 있었다.
앞 집에 사는 사람으로서 불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늘 신경 쓰이고 불안하고 불편했다.
왜 앞 집 식구들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혼자 두고 모두들 미국에 가 있을까......?
왜 할아버지를 혼자 두는지 궁금했다.
앞 집으로 배달될 우편물이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혀있었다.
앞 집 할아버지의 이름 뒤에 적힌 단어 '경주마 OO의 마주 OOO 장군님'....
마주? 그 비싸다는 경주마의 주인? OOO 장군님?
여기가 북한이 아니니 할아버지를 호칭하는 단어 '장군님'은 군(軍)에서 최고 계급인 별(star)을
달고 퇴역한 장군을 호칭함이 분명했고 수 억을 호가한다는 경주마를 투자 계념으로 가지고 계시는
마주(馬主) 셨구나. 같은 아파트 앞 집 건너 집에 살지만 삶의 차원이 달라 보였다.
퇴역 장군이셨구나.
군인 신분으로 '별'을 단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젊어서부터 자기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 것은 당연하고, 실적이 좋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고,
주위 모든 것이 그를 도와줘도 별을 달기 전에 군복을 벗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아마도 별을 달기 위해서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군생활을 했을 거라 짐작된다.
세상은 양과 음의 조화가 늘 균일하게 만들어주니
군생활에서 진급으로 보상을 받는 만큼 아마 가정에는 온전히 시간을 쏟지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가정에 시간을 충분히 쏟지 못하지만
군대 내의 대우와 예우, 급여, 군인 연금은 충분하니 어린 아들, 딸을 조기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도 같이 보냈을 거라 짐작된다.
처음 몇 년은
그립고 애틋했으리라
슬픈 말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워하면서도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
자식들이 가졌던 애틋함은 서먹서먹함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타국에서 본인의 앞 길을 헤쳐나가기 바쁜 그들에게 아마 사치였을 수도 있다.
(앞 집 할머니는 아들, 딸 모두 미국에서 치대를 졸업시켰다고 했다.)
취업을 했던 개원을 하든 간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타국에 유학 보내고 생활비를 대주면서
할아버지는 늙고 아프기 시작했고 자식들은 힘들고 병든 아버지 옆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새벽 5시쯤 문짝을 뜯어내는 둔탁한 소리에 식구들 모두 새벽잠을 깼다.
오렌지색 헬멧을 쓴 119 구급대와 경찰들이 현관문을 열지 못할 만큼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한테
큰일이 생겼으리라 짐작됐다.
예상대로 그 이후로 할아버지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몇 주가 지나고 상복을 입은 할머니와 자식으로 보이는 아들, 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돌아가셨어요.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죄송합니다.
할머니의 말에 불편한 불만만 가득했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당황스럽고 죄송했다.
다음 날 저녁 퇴근한 내게 아내가 말했다.
'오늘 낮에 OO역 A백화점에서
앞 집 할머니랑 아들, 딸이 초밥 드시고 있던데?
근데 상복 입고 초밥 먹으러 왔더라?
거기 딸은 여기 초밥 맛있다 그러면서 먹고 있고'
여기 초밥 맛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중인데 상주가 자리를 비우고
백화점 초밥 코너에서 초밥을 먹는다?
이게 상식적인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앞 집은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고 했다.
아마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간 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아버지가 없었으면 지금의 그들도 없었다.
아픈 아버지는 병에 걸려서 혼자 쓸쓸하게 돌아가셨고,
돌아가신 후에야 자식들은 돌아왔고,
그렇게 돌아온 자식들은 상중에도 아버지 곁을 지키지 못했다.
우리 모두 잠시 이 세상에 여행 온 여행자이지만
여행지에서 만나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자식이 됐는데
이렇게 헤어지나 싶다.
잠깐 만난 사이라도 헤어질 때 아쉬워하는데 말이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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