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B 아빠 to J 아빠] 세 번째 편지

일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한 B 아빠의 노하우

by thankyouseo

J 아빠야. 가장 먼저, 네가 속상해했다는 그 일에 대해서 나 역시 똑같은 대한민국의 일개미로서 너무나 열 받고, 화가 나고, 공감한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리고 그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너에게 가장 먼저 칭찬을 해주고 싶다. 아무리 내가 속한 팀의 팀장님, 그리고 팀원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조직에서 월급을 받는 이상 다들 원치 않아도 서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 같아. 특히 우리나라의 회사는 말이야. 그리고 사실 내가 속한 팀의 팀장님, 그리고 팀원들이 모두 좋은 사람일 수는 절대 없지


내가 주재원으로 5년간 지냈던 스웨덴에서의 회사 생활을 한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하자면, 정말 큰 차이가 있었어. 스웨덴의 경우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복지 선진국, 노동자 천국으로 생각할 만큼 근무환경이 노동자에게 잘 마련되어 있어. 대부분의 기업들은 육아에 대해 100% 지원을 아끼지 않고 육아휴직이나 아이를 돌봄에 있어서는 업무보다도 오히려 우선적으로 배려를 해준단다. 그러한 스웨덴 사회에서 스웨덴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나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무함을 많이 느끼곤 했었지. 오히려 다들 한국사람들처럼 비슷하게 일을 하고 희생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느끼는 바가 없을 텐데, 나를 포함한 주재원 두명만 너무 혹독하게 일을 하다 보니 더욱 비교가 많이 되었던 것 같아. 스웨덴 직원들에게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한국식의 강압적인 업무 방식을 전혀 강요하지 않았거든.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해야 할까. 사무실 직원들 (거의 서른 명)이 모두 너무 행복해 보이는데, 주재원 둘만 일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지.


주재원 생활을 하며 살인적인 업무 스케줄로 너무 힘들었는데, 더 힘들었던 부분이 가정을 잘 챙길 수 없었다는 거야. 건강을 잃었는 것도 컸지. 네가 지난 편지에서 물어본, 바쁠 때 B를 좀 더 효율적으로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당장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노하우를 전해 줄게. 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다양한 노력을 해서 생긴 노하우인데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급하게 돌봐야 할 상황이 있을 시에는, 지체하지 말고 즉시 상사와 동료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하고 아이한테 달려가야 해. 이게 사실 쉽지만은 않은데, 아이를 급하게 돌봐야 할 상황이라면 정말 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일을 하려고 해도 일도 제대로 되지 않고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어 일과 가정 둘 다 놓치고 더 큰 문제를 초래하게 돼. 내가 정말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 그래서 나는 그런 급한 상황에는 즉시 상사에게 말씀드리고 아이를 먼저 돌보고,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내가 먼저 말씀을 드리고, 상사와 업무 시간을 조절해서 일단 아이부터 돌보고 집이나 주말에 회사에서 일을 했어. 물론 이 방법 역시 최선은 아닐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상황을 빨리 상사에게 전하고 아이부터 돌보고 일을 늦더라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 게 최선이었던 것 같아. 오히려 이렇게 해서 아이를 최대한 빨리 잘 케어하고, 일도 책임감 있게 약속대로 잘 마무리하면 다음부터는 이렇게 양해 구하는 게 훨씬 쉬워지고 너에 대한 평판이 더욱 좋아질 거야!


육아휴직 전에 준비하면 좋을 것들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겨우 육아휴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몇 달 더 해본 다음에 가르쳐 줄게. 지금은 아직 어색한 육아에 정신이 없어서 당장 어떤 것들을 미리 준비하면 좋을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친구야. 내가 몇 달 뒤에는 꼭 너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육아휴직 전 준비 필요 사항들을 List up 해서 알려 주겠어!


육아휴직 두 달 차에 들어서면서, B는 학교도 이제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가려고 하고,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밤에 잠도 잘 자고 있단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매우 쉽게 되는 건 아니고, 항상 짜증과 열 받음의 연속이긴 하지만, 그래도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전의 B와 비교하면 너무 많은 부분이 좋아져서 이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 중이란다.


너의 편지를 보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놀랐단다. 초등학교 시절 네가 그런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해봤어.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너무 잘 알고 지내던 너는 항상 밝고 유쾌한 친구였으니까. J 가 아빠의 그런 좋은 면을 닮아서 네가 미리 걱정하는 그런 어려움을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겪지 않을 거라고 믿어. 내가 만나본 J는 정말 밝은 친구였으니까. 오히려 B가 낯을 많이 가리고 해서 나는 오히려 B가 더 걱정이 되는 걸.


사실 나 편해 보려고 시작한 우리의 편지 릴레이에 오히려 내가 너에게 이렇게 위로를 던질 수 있어 기분이 좋아. 최선을 다해서 가정과 일 모두 책임지고 있는 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렴. 내가 알려준 노하우로 직장에서도 너무 기죽거나 걱정하지 말고 조금은 당당하게 행동해보렴. 내가 20년을 알고 지내온 J 아빠는 어디에서든 자기 역할을 책임감 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잘 해내는 친구였기 때문에, 너의 직장생활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가끔 일에 치여도 제수씨에게는 스트레스 주지 마. 그건 제수씨, J, 그리고 너 J 아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서로에게 상처 주지 말자. 우리 날을 잡아서 속 시원하게 회사 욕, 이렇게밖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욕도 한 번 나중에 소주 한잔 하면서 실컷 해 보자.


아참, 그나저나 너의 경우 처가댁이 너희 집 근처라서 장모님이 자주 J를 봐주시잖아? 그럼 혹시 별도로 용돈을 드린다거나, 아이를 맡기거나 부탁할 때 장모님, 장인어른께 꼭 지켜야 할 중요한 것들이나 요령이 좀 있을까? 나도 가끔은 부모님이나 처가댁에 B를 좀 맡기고 개인 시간이나, 아내와 시간을 좀 보내고 싶은데, 해외에서만 우리가 아이를 키워 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맡길 수가 없었는데, 너는 경험이 많으니, 너의 경험을 좀 빌려서 본가나, 처가에 아이를 맡길 때의 노하우를 좀 배워보자! 육아휴직을 해도 개인 시간이 많지 않구나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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