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나만의 비밀스러운 대나무밭이 되어준 육아친구
어릴 적부터 술 먹고 장난치고 까불기 바빴던 두 사람이 아빠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편지를 쓰고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막막했던 육아가 J 아빠라는 전문가이자 철인 아빠를 만나서 담백해지고 당당해졌다. 아마 혼자서 끙끙 앓았더라면 몰랐었을 법한 육아에 관한 것들, 그리고 혼자서는 결코 모르고 지나가고 있었을 나의 육아에 객관적인 진단..
무엇인가를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경험담은 언제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이가 나와 나의 아이와 같은 수는 없기에 많은 부분에서 우리 부녀만의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어려움을 털어놓고 같이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심리적 안정감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뭐가 그렇게 답답할 노릇이라고 대나무밭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면 속이 시원해지는 건지. 학교생활도 연애도 회사 생활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는 나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는 정말 다른 세계의 일.
나는 J 아빠를 나만의 대나무밭 삼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나 너무 힘들어’, ‘진짜 얘는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는 거야’를 1년 동안 수도 없이 외치고 외쳤던 것 같다. 편지뿐만 아니라 우리는 친구이기에 전화통화나 수시로 카톡도 하고 있기에, 글로 차마 쓰지 못한 많은 부분에서 J 아빠는 나만의 대나무밭이 되어 주었다.
남자는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혼자서 동굴을 파고 들어간다는 말이 정말 맞았던 것 같다. 육아를 하며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동굴을 만들어 그 속으로 들어가서 나를 가두려고 했었던 것 같다. J 아빠는 그런 나에게 ‘나도 동굴에 들어가 봤는데 더 힘들어. 어서 나와서 햇빛도 쬐고 비도 맞아보고, 여기 대나무밭에 와서 소리도 좀 질러봐.’라고 1년 동안 열심히 소리쳐 주었고, 그 덕분에 동굴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만 같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초기에는, 정말 내가 육아에 대해서 마음의 여유가 1도 없었기에 나에게서 조급함이 보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육아휴직을 하고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여유가 생겼던 내가 J 아빠의 현실을 도닥여 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육아휴직과 스웨덴에서의 육아가, 한국에서 그리고 맞벌이 부부로서, 그리고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J 아빠가 곧 내 모습이 될 수 있었기에 더 많이 공감이 갔다. 그리고 스웨덴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통해 아빠로서, 그리고 나로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J 아빠와의 편지와 대화를 통해서 조금 더 많이 생각해보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 볼 수 있었다.
‘아빠에게도 육아 친구가 필요해’는 정말 맞는 말이다. 설령 평소에는 친구가 필요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육아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혼자서는 외롭다. 아내와 가족에게도 말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특히나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남자다움, 남자다워야, 아빠는 아빠다워야 한다는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장벽이 있는 것만 같다. 똑같은 마음의 장벽을 가지고 있는 육아 친구를 통해 그 장벽이 함께 스르르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J 아빠와 1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B를 키우며 내가 대단하게 성장했다거나 육아 전문가가 되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사실 그렇지도 않다. 매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J 아빠라는 육아 친구를 통해서 나는 나만의 대나무밭을 갖게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폭발하듯 뱉어놓은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것들을 말이다. 물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어느 날부터 바람이 불면 비밀이 드러나듯이, J 아빠가 나 아닌 다른 이들과 육아 친구가 되는 바람(?)을 저지르면 내 이야기를 경험담 삼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빠라는 직책을 가진 이들 간에는 공통이 연민이 존재한다.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는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고 실제로 도와주기도 하지만, 실제 시선과 관심은 육아를 하고 있는 아빠들에게 더욱 많이 간다. 우리의 프로젝트 ‘아빠에게도 육아 친구가 필요해’가 공통의 연민을 가진 아빠들 간의 매개체가 되어 줄 수 있기를, 육아 친구를 통해 아빠로서의 마음의 짐과 장벽을 스스로 녹여 없앨 수 있기를, 나만의 대나무밭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엄마가 건강해야 집안이 건강하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제는 아빠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만 한다. ‘슈퍼맨 아빠’ 시대에 살고 있는 아빠들이여. 슈퍼맨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영화에서도 보면 훌륭한 동료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