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B 아빠 to J 아빠] 열 번째 편지

육아휴직, 한 발자국 물러서서 나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

by thankyouseo

친구야!!! 둘째 축하한다!! 내가 한국에 들어가서 더 크게 축하해 줄게! 너랑 제수씨 모두 바랬던 아이잖니?! J도 이제 많이 컸고, 부모 두 사람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둘째 때는 더 수월할 거야!!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


나는 육아휴직을 통해서 B가 심리적인 안정과 통잠을 자게 된 점이 가장 큰 수확 이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인생을 한 발자국 물러 서서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 아직 육아휴직 ING 형태 이만,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에 대해서 조금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 사실 그동안 열심히 회사 일 하고, 늦게 퇴근해서 집에 와서 B와 놀아주고, 주말에도 가족과 함께 보내다 보면 나만의 시간이 없어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꾸역꾸역 참고 해내고 있는 건지 모르고 그냥 지나쳐 가버릴 때가 많잖아. 이렇게 육아휴직을 통해 억지로라도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 보니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고, 회사 일도 나의 인생도 조금 객관적으로 돌이켜 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 너에게도 육아휴직은 정말 꼭 추천한다 친구야.


나는 개인적으로 육아휴직을 통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나 하고 싶었던 일이 정말 없이 열심히 일만 해온 일개미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지금에나마 평생 숙원이었던 수영도 배우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몰랐던 나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보고 있는 중이야. 내가 어릴 때 물에 빠진 이후로 물을 너무 무서워했는데, 큰 맘먹고 여름에 한국에서 개인 레슨을 받고 와서 이 곳 스웨덴 수영장에서 거의 매일 연습을 하고 있거든.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야. 나도 몰랐는데 이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니 물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아는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었어. 이렇게 시간이 나서 수영을 꽤 오랜 시간 배워보지 않았다면, 계속 물을 무서워했다면 나는 계속 물을 싫어하고 안 좋아한다고만 나 자신을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또 몰랐던 어떠한 나의 모습들이 있는지, 내가 해 볼 수 있는 일들, 그동안 안 해 봤던 일들을 조금씩 해 보고 있는데, 조금씩이나마 하면 할수록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나의 모습은 사회에서 충실히 내 역할을 해 내기 위한 일개미로서의 모습이었지, 진정한 나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어.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 해서 내 인생을 살아왔기에 후회는 없어. 지금에라도 이런 시간을, 그리고 이런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아내와 연애 3년, 그리고 결혼생활 6년, 거의 10년 가까이 가장 가까운 인생 친구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내를 처음 알았던 그때보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내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 것 많이 알고 있는지, 그리고 이 사람이 좋아하는 일들과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니 전혀 아니더라고. 오히려 연애 초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이 사람이 원하는 걸 더 많이 해 주려 노력했던 것 같아. 육아휴직을 하고, B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이제 우리 부부도 잠도 잘 자고 가족 모두가 매우 건강해지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아내와 함께 매주 수요일에 수요 점심 데이트를 시작했어. 꼭 비싼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서로가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매주 한 군데씩 골라서, 짧게나마 같이 분위기도 내고 대화도 많이 나누곤 한단다. 이렇게 일부러라도 ‘수요 런치 데이트’를 하다 보니, 아내가 어떤 음식들과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고 부부 사이도 더욱 돈독해지는 것 같아. 한국에서 J 아빠와 제수씨 둘 다 무척 바빠서 어렵더라도, 다행스럽게 장모님이 바로 근처에 사시니 매주는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이런 시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추천!


스웨덴은 벌써 최저 온도 영하로 내려 나는 시기가 왔어. 사실 매년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여름이 길고 더워지고, 오히려 겨울은 조금씩 짧아지고 눈도 적게 오고 했었는데, 이상하게 올해는 여름이 빨리 끝나고 빨리 추워지고 있어. 매우 짧은 가을이 지나고 이제 겨울이 되고 있단다. 이럴 때는 한국이 그립기도 하지만, B가 어린이집을 여기서 매우 잘 다니고 있어서 우리는 최대한 B에게 맞춰 주려고 해. 날씨가 추워지니 더 게을러지고 몸도 움츠리게 되는 것만 같아. B도 잠을 잘 자고 우리 가족도 안정을 찾다 보니, 이런 안정감에 그냥 편안함만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해서, 아내와는 수요 런치 데이트, 그리고 매일 수영을 꾸준히 하면서 체력도 기르고 남은 육아휴직을 최대한 잘 활용해 보려 해.


육아휴직도 이제 6개월을 지나, 7개월째인데 이제 가족들이 많이 안정된 대신에 오히려 내가 갑작스럽게 육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처음에는 B가 통잠을 자고 예전처럼 소리도 지르지 않아서 뭔가 마음의 여유가 확 생기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이런 감사한 것들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나 봐. 그래서 오히려 오줌은 아이에게 더욱 야박한 아빠가 되는 것 같아. 사실 여기(스웨덴)야 말고 내가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 말을 다 할 수도 없고, 복직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보니 내가 가족들과의 안정감이 얻어지는 대신에 나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 근데 정말 어디다 풀 방법이 없다 보니 많이 답답할 때가 많아. 그래도 매일 만보씩 걷고, 수영을 하며 땀을 흘리니 기분이 좀 상쾌해지는 것 같아서 꼭 매일 운동을 하려 해.


그리고 너한테 이렇게 육아와 관련된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편지를 통해서나마 뱉어내니 속이 좀 후련해지는 느낌이야. 마치 옛날 전래 동화에 보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해. 혹시 J 아빠네 직장에도 육아휴직을 쓴 아빠가 있어? 혹시나 있다면 그분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반응이 어때? 그리고 복직 후에도 직장을 잘 다니고 계셔? 육아휴직을 쓰며 사실 나도 고민과 걱정이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많거든.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좋아져서 아빠 육아휴직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요즘 분위기가 어떤지 그냥 너한테만 살짝 물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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