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4년 3월. 윤년으로 인해 하루 더 긴 2월을 마지막으로 나는 퇴사했다. 이직을 하기 전에 들을 세미나도 있어서 바로 일을 하지 않을 예정이었기에 남은 시간은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고민했던 여행지 후보로는 봄이 아름다운 일본의 교토, 동서양 문화 화합의 장인 말레이시아 믈라카, 바다가 아름다운 세부가 있었다. 하지만 위 여행지들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니 세부에는 멸종위기동물인 고래상어와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동물들을 보기 위한 패키지여행도 판매되고 있었으며 3월 세부의 날씨는 화창하고 비도 잘 오지 않는 건기가 아닌가! 아, 그래. 이왕 여행하는 거 동물도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2월에 세부 비행기를 예약했고 마침내 퇴사한 뒤인 3월 5일에 세부행 출국 비행기에 올라탔다.
혹시나 세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세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세부는 필리핀 전체 지도를 쫙 펼쳐놓고 봤을 때 중앙부보다 살짝 남동쪽에 있는 세부섬에 있는 주도시다. 세부섬 자체는 약 4500제곱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제주도의 2.5배 정도 될 정도로 은근히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세부시는 필리핀의 제2의 도시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바다와 산이 보여주는 멋진 풍경 덕에 일찍이 전 세계의 여행객들의 여행지로도 인기가 많다. 한국인이 워낙 많이 가는 탓에 한국어로 된 간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영어가 통하는 나라기 때문에 (영어가 된다면) 어렵지 않게 여행할 수 있다. 세부에서 가장 유명한 투어가 바로 오슬롭의 고래상어 투어와 모알보알의 바다거북 투어다.
세부에 대한 설명은 이쯤 해두고, 내가 생각한 계획은 이랬다. 인천에서 세부로 가는 비행기는 항상 새벽 비행기가 많았기 때문에 세부에 도착하면 새벽 시간이다. 그래서 엄청나게 늦은 체크인으로 인해 호텔 1박 비용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선 새벽 2시부터 준비해야 한다. 세부 시티에서 고래상어가 있는 오슬롭까지는 3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도착한 그 즉시 투어를 시작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겠다 생각하여 무모하지만 합리적인, 그리고 피곤한 나의 동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행기를 탈 때 자지 못해 엄청나게 피곤한 상태로 세부 공항에 도착했고 시간은 자정 12시 30분 정도였다. 공항이 크지 않아서 가이드분을 어렵지 않게 만났다. 가이드분은 우리가 연착될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빨리 도착했다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앞에서 설명했듯 세부섬 면적이 넓은데 현재 있는 막탄 공항과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오슬롭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어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하셨다. 필리핀 도로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라고 하셨다. 이때 잤어야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자지 못하고 깜깜한 밤의 세부섬 도로를 지그시 지켜보았다.
여러 공상과 거리에 있는 들개들을 유심히 보다 보니 3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어느새 오슬롭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3시-4시 정도였는데 벌써 대기 중인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어림잡아 50명은 되어 보였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가장 빠른 타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5시는 되어서야 입장권을 받을 수 있었고 가이드 분의 리드하에 어렵지 않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별도의 탈의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고 일회용 렌즈도 착용했다. 주의해야 할 점은 고래상어를 절대로 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니 새벽 3시에 도착했는데 이 정도! 그리고 한국어가 맨 위에 있는 간판은 뭔가 좀 웃기다.
고래상어를 왜 만지면 안 될까? 일단 고래상어는 어떤 동물인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고래상어는 상어과에 속하는(고래냐 상어냐라고 하면 상어다!) 초대형 해양생로 몸길이가 무려 15m가 넘으며 무게는 무려 40톤에 이를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타는 시내버스보다 더 큰 사이즈다. 고래상어는 예전부터 행해오던 남획에 의해 개체수가 꾸준히 감소했는데 필리핀 정부는 고래상어를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서 1998년 어획 금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체수는 꾸준히 IUCN(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에서 지정한 멸종위기동물 EN(Endangered) 등급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고래상어를 전 세계적으로 보호하고 있는데 만지기만 해도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이 고래상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 어떠한 접촉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하는 오슬롭 해변, 고래상어 투어를 위한 보트가 바다를 장식하고 있다.
이런 주의사항을 듣고 난 뒤 물에 빠지는 것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고래상어를 유인하기 위한 새우젓을 엄청나게 뿌리는데 그 때문에 오슬롭 인근 해역은 염도가 높아 물에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새우젓을 뿌리는 게 된 계기는 조금 슬프면서도 웃기다. 고래상어가 보호종으로 된 이후 고래상어와 접촉하는 것도 금지가 되었는데 문제는 이 고래상어가 어민들이 잡아놓은 물고기들을 청소기처럼 빨아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새우젓을 뿌리면 그쪽으로 간다는 것을 확인한 어민들은 새우젓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새우젓을 뿌리다가 관광객 쪽으로 오게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한 직원은 이것을 상품으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야생에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고래상어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타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오슬롭의 길고양이
이런 주의사항을 다 듣고 시작한 고래상어 투어. 고래상어 투어는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그 멋진 고래상어를 30분만 볼 수 있다니. 고래상어는 얼마나 클지 그리고 압도적으로 큰 생명체를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이 뭔가 두려우면서도 긴장되었고 한편으론 기대됐다.
고래상어가 보이는 포인트에 도착하여 고래상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염도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몸이 자꾸 뜨는 것이었다.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있는 나는 구명조끼가 오히려 불편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구명조끼를 벗으면 보트맨들에게 혼날 테니 일단 입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못 본 사이에 새우젓을 뿌리기 시작했는지 고래상어들이 드디어 접근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랑 최대한 떨어져 고래상어가 사람과 접촉을 하지 못하도록 충분한 거리를 두고 새우젓을 뿌린 것 같았다.
드디어 처음 고래상어를 본 순간. 그런데 고래상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크지 않았다. 원래 대형버스를 생각했는데 소형버스 정도..? 물론 바다라서 시야에서 차이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했지만 고래상어는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그리고 고래상어는 위험하지도 않았다. 고래상어들은 그저 자신의 앞에 있는 새우젓에만 관심이 쏠린 듯했다. 하지만 고래상어가 가지고 있는 흰점과 그 점을 둘러싸고 있는 줄무늬, 그리고 깊은 계곡처럼 파인 아가미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내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고래상어의 외형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일부 관광객들은 고래상어와 더 가까이 찍기 위해 고래상어 쪽으로 가는 걸 시도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보트맨들은 주의를 줬다. 내 손에 묻은 미생물이 혹여나 고래상어에 피해를 줄까 해서 나는 눈으로면 고래상어를 즐겼다. 고래상어의 배에 붙은 빨판상어도 마치 고래상어의 새끼 마냥 붙어 있는 것이 귀엽기도 했다.
맛있니..?
그렇게 짧고 굵었던 오슬롭의 고래상어 투어는 끝났다. 워낙 물이 짠 탓인지 임시 샤워장에서 소금기를 한참 동안 씻었다. 그리고 고래상어를 다시 한번 복기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고래상어는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고(아직 덜 자란 고래상어일 수도 있겠다.), 그들의 새우젓에만 관심이 있어서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래상어가 가진 독특한 무늬(마치 화장실 바닥 타일과 비슷하달까)는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었다. 분명 사람이 고래상어에게 주는 새우젓으로 고래상어는 안정적으로 먹이가 나오는 식당을 찾은 셈이다. 사람은 고래상어로 돈을 벌고 고래상어는 사람으로부터 간식을 얻는 셈이다. 어느 정도는 분명 win-win 관계인 셈이며 동물과 사람이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예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관광객이 고래상어에게 미치는 악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분명 사람이 의도하지 않아도 빈번하게 사람과 접촉한 고래상어도 있을 테고 사람에게 있는 미생물이 분명 고래상어에게 염증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미생물에 대해 고래상어가 면역력이 있을 리는 만무하니 상처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 미생물이 고래상어에게 큰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리고 고래상어가 하루에 먹는 양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150톤인 대왕고래가 하루에 4톤의 크릴새우를 먹는데 고래상어도 그 못지않게 많은 양의 먹이를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주는 새우로는 고래상어들이 하루에 먹어야 할 칼로리보다 훨씬 적어 보였고 결국 칼로리 부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었다. 그렇다고 고래상어에게 엄청난 먹이를 주기에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혹시나 야생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을지(이미 오슬롭 주변 고래상어들은 야생성을 조금 잃어버렸을지도)에 대한 문제도 있으니 딜레마다. 사람도 좋고 고래도 좋을 수 있지만 너무 지나치게 사람에게 노출될 경우에는 고래상어에게도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타까웠다. 어쩌면 야생에서 고래상어를 보는 행위 자체가 고래상어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지금처럼 투어로 보더라도 사람과 고래상어가 조금 더 떨어져서 사파리처럼 완전하게 분리된 상태에서 보는 것이 고래상어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사진은 잘 안 나오겠지만 고래상어를 위해서라면..)
짧은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를 뒤로하고 생각지도 못한 세부의 보물, 맑은 바다를 품고 있는 모알보알을 향해 다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