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롭에서 거대한 고래상어를 30분간 마주한 뒤, 바다거북을 보기 위해 다시 달렸다. 오슬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다 보면 모알보알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여기서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 가이드분이 고래상어 투어가 끝나고 말씀하시길 오슬롭보다 모알보알이 훨씬 더 재밌고 볼거리도 많다고 한다. 바다거북은 원래 수심이 5m 정도 되는 깊은 곳에서 종종 발견돼서 눈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 정도였는데 요즘은 이유는 모르지만 얕은 해안가에서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이드 분이 이것저것 설명하셨는데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탓에 듣는 도중에 나는 잠들어 버렸다.
모알보알의 위치 / 출처 : 구글 지도
오슬롭에서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모알보알에 도착했다. 오슬롭에서는 해가 막 뜨기 시작해서 햇빛이 희미한 느낌이었다면 모알보알에 막 도착한 10시쯤에는 뜨거운 햇빛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아 참고로 내가 간 당시 세부 최고 온도는 31도로 한국의 최고 기온보다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은 뜨거움, 따뜻하면서도 화창한 모알보알의 날씨에 나는 내 기분도 상쾌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를 선호하는 탓에 지금과 같은 세부의 날씨는 나의 기분을 업시키기 딱 좋았다. 도착하고 난 다음에 가이드분이 주의점을 말씀해 주셨다. 고래상어와 마찬가지로 바다거북을 조금이라도 만질 경우는 벌금이라고 한다. 다만 바다거북이 와서 치는 건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접촉하면 바다거북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거북은 푸른바다거북(Green Sea turtle)인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거북은 다 이 친구라고 보면 되며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꼬부기도 이 친구가 모티브일 것으로 추측된다. 푸른바다거북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면, 푸른바다거북은 조금 온난한 바다에서는 전부 볼 수는 있으나 서식지 파괴로 인해 현재는 IUCN Red list의 "EN(Endangered)" 단계에 있다. (앞서 본 고래상어와 같은 단계에 있다.) 푸른바다거북의 등갑 길이는 약 1m에 무게는 많이 나가면 100kg까지도 나간다고 한다. 주로 해조류를 먹고사는데 어떤 해조류를 먹느냐에 따라 몸 색깔이 바뀌기도 한다. 또 알이 부화하는 동안 온도에 따라 새끼의 성별이 결정되는데 온도가 낮으면 수컷, 온도가 높으면 암컷이다. 요즘처럼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는 경우에는 암컷의 비율이 너무 높아 번식에 불리하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푸른바다거북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모알보알에서 바다거북을 볼 수 있는 해변으로 가기 전에 나를 바다거북으로 이끌어줄 가이드를 따로 만났다. 30대인 나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을 가진 남성이었는데 구릿빛 피부에 마르지만 탄탄한 근육이 인상적이었고 웃음을 늘 잃지 않은 청년이었다. 이 청년이 수영을 하면서 바다거북으로 가이드하겠다고 했다. 여기는 바다거북뿐만 아니라 정어리와 니모(흰동가리)가 있으니 스노클링 하면서 구경하면 좋다고 했다.
니모의 모티브인 흰동가리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돌이 아주 많았는데 아쿠아 슈즈를 신고 있었던 탓에 발바닥이 굉장히 아팠다. 하지만 그 순간만 참으면 아쿠아 슈즈가 더 편하다. 뜨거운 햇빛으로 달궈진 모알보알의 물은 오슬롭보다도 더 따뜻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가이드에게 끌려다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스노클링 하면서 필리핀 바다에 있는 해양 생물들을 관찰했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바다들에게 미안하지만 필리핀의 바다는 우리나라 바다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웠다. 필리핀의 바다는 시야가 너무 잘 보여서 저 멀리 있는 작은 정어리까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마 미세물질 등의 탓이겠지?) 작은 정어리까지 쉽게 볼 수 있는 맑은 바닷물이었지만 정어리들은 포식자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적게는 수백 마리, 많게는 수천 마리씩 떼 지어 다녔다. 내가 헤엄치며 나아가니 마치 그 무리가 날개를 펼치듯 갈라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바닷속을 점찍듯 우산을 펼치는 해파리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 눈을 더 끄는 것은 흔히 니모라고 불리는 흰동가리였다.
정어리떼
숨어있는 흰동가리
흰동가리는 말미잘에 숨어 있었는데 워낙 색이 특이한 탓에 돌에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다웠다. 우리가 헤엄치는 건 상관없는지 말미잘에서 푹 쉬고 있었다. 참고로 흰동가리와 말미잘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공생관계다. 화려한 흰동가리가 먹이를 유인하면 말미잘은 독으로 그 먹이를 죽이고 포식하는데 흰동가리는 그 찌꺼기를 먹는다. 다만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독에 면역이 있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나는 어차피 이들을 포식하지 않으니 눈으로 보기만 했다. 나에겐 흰동가리와 말미잘이 그저 바다에 핀 꽃처럼 아름다울 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바다거북은 보이지 않았다. 깊은 곳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가이드는 어떻게 해서든 바다거북을 보여주기 위해 쉬지 않고 헤엄쳤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얕은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다거북이 있었다. 내가 인터넷에서 본, 캐릭터 분석하면서 본모습과 똑같았는데 오히려 체감상 굉장히 큰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거대해서 무서울 줄 알았는데 해조류를 평화롭게 뜯어먹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귀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바다거북 주변을 둘러싼 풍경은 평화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듯했다.
바다거북 주위로 10명이 넘는 사람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들었다. 바다거북은 다행히도 해조류를 잘 뜯어먹고 있는데 그 주변에 사람들이 바다거북과 사진을 찍기 위해 잠수하는 모양새였다. 그 바다거북이 낯을 잘 가리지 않는 성격이어서 망정이지 내가 그 바다거북이었으면 깊은 바다로 도망쳤을 것 같다. 다만 바다거북은 사람이 이러나저러나 그냥 조용히 해조류를 뜯어먹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기 어렵다고 판단한 가이드는 다른 바다거북을 찾아서 다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한 마리 더 발견했다. 다른 바다거북과는 다르게 등갑에 뾰루지처럼 큰 따개비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는지 사람이 옆에서 찍어도 해조류만 뜯어먹고 있었다. 평화롭게. 바다거북과 사진을 찍기 위해 가이드는 나를 위에서 내 등을 눌러서 억지로 잠수시켰고 그 타이밍을 노려 사진을 찍어주었다. 다행히 바다거북과의 접촉은 없었다.
바다거북과 사진을 찍으며 다시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확실히 깊은 곳보다는 얕은 해변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나 같으면 사람이 이렇게 많은 해변보다는 깊은 바다를 선호했을 것 같은데, 사람과의 접촉을 무릅쓰고 왜 해변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을까 생각했다. 가이드분께 물어봐도 (당연하지만) 모른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땐 깊은 바다에서의 환경이 지구 온난화로 바뀌는 바람에 먹을 것이 줄었다던지, 바다에 녹아있는 산소량인 용존 산소량이 변했다던지, 아니면 이 인간들은 해치지 않으니 먹을 것이 많은 해변가로 왔다던지 등등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거북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답은 연구자들이 알아서 밝혀주겠지.
정어리, 흰동가리, 바다거북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모알보알의 일정을 마쳤다. 고래상어 외에는 다른 생물은 보기 힘들었던 오슬롭과는 달리 모알보알은 정어리 떼, 해파리, 흰동가리, 그리고 바다거북 등 다양한 생물들이 있어서 훨씬 더 다채로웠고 즐거웠다. 다만 바다거북과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바다거북 주변에 둘러싼 수십 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 무리 중의 하나가 된 수의사인 나는 내 마음속 어딘가가 찜찜해졌다. 또 이렇게 다채로운 걸 좋아하면서도 우리 인간의 활동으로 생명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는 사실도 찜찜했다. 그렇다 이런 찜찜함은 죄책감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카르카르에 가는 중에도 이러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내가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려 경각심을 주기로. 그래서 나는 세부에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