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 역습을 당하고 있는 인류
인간은 지구를 사실상 정복했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들은 여러 맹수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 최상위 포식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피식자도 아닌 중간 포식자 정도 되었다. 다른 맹수들에 비해 시각 능력도 출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또한 동물들의 목을 뚫을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도 없었으며 다른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독(Poison)도 없었다. 다행히 인류가 가진 것은 똑똑한 지능과 손이었다.
인류가 우연히 불을 발견하고 무기를 만들어냄에 따라 생태계의 위치엔 격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을 이용하여 맹수들을 쫓아내고 무기를 이용하여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맹수들과의 싸움에서도 우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농경사회에서는 필요한 동식물들을 길들이면서 본인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동물들에게서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인류는 생태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으며 인류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어떠한 동물도 인간을 괴롭힐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성가시게 하는 정도?) 오히려 인간들이 동물들을 괴롭히고 있다. 동물들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매년 엄청난 숫자가 희생당하고 있다. 또한 동물들로부터의 안전이 확보된 인류는 1년에 거의 1억 명씩 늘어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지구를 메우고 있는데 이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많은 자연을 개간하면서 동물들의 서식지도 파괴하고 있다. 그렇게 동물들은 계속해서 인류에게 희생당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던 동물들이 최근 더 많은 빈도로 인류에게 엄청난 역습을 시작하고 있다. 바로 인수공통전염병을 통해서다.
인수공통전염병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같은 병원체에 의해 전파되고 증상이 발생되는 질병을 말한다. 즉, 동물과 사람이 같이 걸린다는 말이다. 비록 동물들이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가할 수는 없지만 우연하게 자신들이 가진 병원체로 인간들을 죽음으로 몰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인간이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동물들과 마주칠 확률이 계속해서 높아지면서 이러한 병원체를 공유할 확률은 높아지고 있다. (사실 동물들은 반격할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인간이 그들을 침범하면서 병원체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자승자박이 된 셈이다.) 과연 인간이 동물들에게 반격당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경우는 뭐가 있을까.
최대 수 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
14세기 중기, 전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쥐와 벼룩을 통해서 옮겨졌다. 페스트에 감염되면 고열을 내고 현기증과 구토를 동반하며 의식이 혼미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페스트도 여러 양상을 나타내면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데 선페스트, 패혈증형 페스트, 폐렴성 페스트로 나뉜다. 선페스트는 보통 림프절이 감염되어 생기는 경우인데 그나마 치료할 경우 빠르게 증상이 호전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가 빠르게 진행될 수 없었던 중세에는 결국 림프절을 따라 균이 퍼지면서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출혈성 반점, 상처 부위의 출혈, 괴사 등을 나타내어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폐렴성 페스트는 선페스트보다 예후가 훨씬 좋지 않은데 직접적으로 호흡기에 침투하여 우리의 호흡기를 파괴하여 호흡 부전, 호흡 곤란, 각혈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이러한 전염병에 대처할 수 없었던 중세 사람들은 결국 수억 명이 사망하였으며 유럽의 3분의 1이 사망하였다. 인류는 쥐와 벼룩에게 역습을 제대로 당한 것.
매년 100만 명의 사망자를 만드는 말라리아
말라리아는 인류가 아직 정복을 못하고 있는 최대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모기에게 역습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질병이다. 매년 2억 명 이상이 감염자를 만들고 있으며 사망자는 매년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말라리아 유충이 체내로 들어와 감염된다. 감염되게 되면 오한기-발열기-발한기의 증상이 나타나며 감기와 증상이 유사하며 적혈구를 파괴하면서 빈혈 증상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종국에는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질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인접한 경기 북부와 강원도 북부 지방에 남아있는데 그렇게 보면 이북에는 말라리아가 있다는 뜻으로 향후 통일이 된다면 말라리아도 우리나라에 상당히 골칫거리를 낳을 수 있는 질병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단일 질병으로는 최대 사망자를 낸 천연두
단일 질병으로 최대의 사망자를 낳은 천연두는 10억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한다. 천연두의 원인이 되는 동물은 켐프저빌로 알려져 있는데 켐프저빌에 있는 원인체가 낙타를 통해 다시 사람으로 유입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천연두는 종두법이 나오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존재해왔는데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도 이러한 천연두가 '마마'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천연두에 걸리게 되면 엄청난 흉한 발진이 나타나게 되며 고열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혹시나 살아남더라도 흉한 곰보자국이 남기도하고 뇌나 시력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많았다. 공기 감염 역시 가능하여 전염력도 강했는데 제너라는 사람이 소의 젖을 짠 사람이 우두(cowpox)에 걸렸을 경우 훗날 천연두에 걸리더라도 약하게 앓고 지나가는 것을 착안하여 최초로 백신을 개발하였다. 그 이후 천연두는 빠르게 감소하였고 현재는 지구 상에서 박멸되었다.
한국에 70만 명의 확진자를 발생시킨 신종인플루엔자
2009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플루는 우리나라에서 70만 명의 확진자를 발생시켰고 214명이 합병증으로 사망한 질병이다. 신종인플루엔자는 돼지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돼지 체내에서 재조합되어 사람에게 전파된 경우로 역시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감염 양상은 기침, 재채기 등에 의해 외부로 나온 바이러스 입자가 체내로 들어와 비말감염이 되는데 고열, 기침과 같은 호흡기 증상 외에도 설사와 구토 등의 소화기 증상과 두통도 유발하니 상당히 골치 아팠던 독감이었다. 다행히 타미플루가 등장하면서 신종플루는 어느 정도 완화되었고 돼지에게 역습을 받았던 인류는 다행히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이보다 더한 독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진행형! 2억 명의 확진자와 4백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코로나19
2020년 초, 그때까지만 해도 우한에 폐렴이 유행할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특유의 엄청난 전파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거리두기 4단계까지 격상하면서 전염병의 전파를 국가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증상은 기침, 재채기, 발열, 후각 상실 등의 호흡기 증상 외에도 근육통과 두통 같은 증상도 포함하고 있으며 면역력이 약한 노인의 경우 치사율이 꽤 높은 전염병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코로나의 전파력이다. 5분 동안 엘리베이터에 잠깐 같이 있어도 감염될 만큼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는 21세기 초연결 사회에서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록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있다고는 하나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종식은 거의 불가능하며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2021년 8월 19일 기준 2억 명의 확진자와 4백만 명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는 박쥐 혹은 천산갑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박쥐가 원인이던 천산갑이 원인이던 코로나도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뜻이다. 결국 인간의 탐욕이 박쥐와 천산갑과의 접촉을 높였고 결국 코로나라는 역사에 남을 전염병을 초래했다.
더 큰 문제는 미래에 있다.
이러한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항하기 위해서 "One Health"라는 개념을 2010년대 미국에서 도입하였다. 감염병을 대처하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의사뿐만 아니라 동물을 접하는 수의사, 그리고 환경 전문가까지 투입되어 전염병에 대처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인간의 대처를 비웃듯 전염병의 진화가 더 빠른 것 같다. 결국 코로나 19의 전파를 막지 못했으니까.
핵을 보유하고 있는 덕에 역설적으로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과의 전쟁은 앞으로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 미래가 더 위험할 것이다. 전쟁이 없는 유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인류는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더 많은 자연을 파괴하고 더 많은 동물들과 접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코로나19보다 더 위협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의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다. 확실한 건 인류의 발전 속도보다 전염병의 진화 속도가 더 빠르기에 동물의 역습으로 인한 인류의 절멸 위기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인류 스스로의 행보에 달렸다. 이제는 새로 개척하기보다는 있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동물을 계속해서 파괴하고 쫓아내다 보면 결국 파괴당하고 지구에서 쫓겨나는 건 인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