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성화는 해야 한다.
어떤 존재가 있다. 이 존재는 인간보다 훨씬 고등하며 문명이 발달되어 있다. 이 고등한 존재들은 인간의 생김새가 너무 귀여웠다.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 인간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 존재가 우리 인간들을 강제로 거세하여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키우고자 한다고 한다. 인간을 중성화하지 않으면 밖으로 돌아다니고 행동이 공격적으로 바뀐다는 이유에서다. 과연 인간인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번식이라는 본능을 강제로 강탈당한 느낌은 어떨까? 차마 우리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바로 반려동물의 중성화에 대한 이야기다.
반려동물의 중성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보다 고등한 동물이 인간 고유의 번식 욕구를 강탈하는 것에 대해 원하지 않듯이 동물들의 생식 욕구를 인간이 강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물의 자연적인 욕구를 인간이라는 이유로 강탈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중성화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들면서 중성화에 대해 반대한다. 비록 내가 수의사지만 이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사실 중성화는 도의적인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단지 고등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번식 욕구를 강제로 없애버릴 권리는 인간에게는 없다.
그러면 수명 연장과 삶의 질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어떨까? 사실 이 주장도 맞는 말이다. 일부 주장에서는 중성화를 한 개체에서 수명이 1.5년 정도 더 많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중성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보호자가 그 개체에 대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뜻이고 그로 인한 수명 증가가 더 타당해 보인다. 오히려 중성화는 비만을 촉발하여 삶의 질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그러면, 중성화는 수명이 연장되지도 않고 도의적인 책임에도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필자는 도의적인 책임과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중성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돌봐주고자 하는 동물과 함께할 것이라면 특히 실내에서 키울 것이라면 중성화는 꼭 필요하다. 중성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이기는 하지만) 보호자와 동물 사이에 그리고 보호자와 타인의 마찰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동물이 중성화를 하지 않을 경우 아무래도 짖고 시끄럽거나 좀 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정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행동 때문에 보호자는 동물을 키우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그 아이는 유기견이나 유기묘가 되는 것이다. 차라리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성화를 하는 것이 백번 천 번 낫다. 그리고 중성화를 하지 않은 동물들의 경우 욕구가 억제됨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시끄러운 행동을 보여주는데 이는 보호자 외에도 이웃집에게도 소음으로 인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비록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반려동물 중성화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스트레스와 타인의 스트레스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아닐까.
또한 중성화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를 막을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장점이 있다. 중성화를 하지 않을 경우 여러 생식기계의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고환염, 유선종양, 자궁축농증 등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발생 확률이 약 1/3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실제로 이러한 질병으로 오는 아이들은 거의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로 와서 걸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성화 비용보다 고환염, 유선종양, 자궁축농증을 치료하는 비용이 훨씬 비싸므로 중성화를 사전에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옳다. 백신 역시 마찬가지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을 경우 아주 높은 확률로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전염병에 걸려 더 많은 비용이 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백신 맞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물론 나의 주장이 우리 인간의 편리를 위해 중성화를 했으니, 인간의 편의대로 동물들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동물을 야생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키울 의도가 있다면 중성화를 시켜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중성화 수술 자체를 도의적인 잣대로 불법 수술로 지정될 경우 예상되는 피해는 꽤 성가실 것으로 추측된다. 행동학적인 문제로 인해 유기견과 유기묘도 급속도로 늘어나 그중 일부는 야생에 적응하여 북한산 들개처럼 인간에게 도리어 피해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무분별한 번식으로 인해 인간 사회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중성화 찬반은 어쩌면 대의 혹은 실리의 가치관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것이 옳고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사실 둘 다 옳다.) 그렇다고 너무 대의에 쏠리면 인간 사회에 오히려 불편함을 줄 것이고 실리에 너무 쏠리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타협점은 바로 야생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자연에 맡기고 인간 사회로 편입될 반려동물만이라도 중성화를 하는 것이 그나마 타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