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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강산갈래 Dec 16. 2021

[땡큐, 블루!] 야구를 하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上

공놀이가 너무 좋아 멈출 수 없는 사람의 심판 이야기 - 2화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습니다. 야구를 워낙 좋아했던 나머지 학교 수업으로 야구를 수강했고, 단과대학 내 야구 동아리에 가입해 야구를 연습하고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저의 인생을 크게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야구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서울대 야구 대표팀에 대해서 떠올리십니다. 통산 전적 1승 xxx패의 팀으로 유명합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까지 엘리트 야구를 하던 선수가 사실상 거의 없는 팀이기 때문에 다른 대학교 팀들과 경쟁하는 데 무리가 있죠.


 하지만 서울대학교의 야구에는 다른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생 동아리 야구 시장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야구 리그인 '스누리그(SNU League)'가 바로 그것입니다. 스누리그는 서울대학교 학부생, 대학원생, 졸업생, 교원 그리고 직원까지 서울대학교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출전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의 자치 야구 리그입니다.


 서울대학교에 있는 모든 동아리 야구팀들이 가입된 스누리그는 매주말과 공휴일마다 서울대학교 야구장에서 열리는 야구 대회입니다. 스누리그는 매년 30개가 넘는 팀이 참가해 2월부터 12월까지 10달 동안 이어지는 대장정입니다. 각 팀은 1년에 십수 경기를 치르고, 시즌 마지막에는 포스트시즌에 돌입해 그 해 최후의 승자를 '관악시리즈'에서 결정합니다. 


 스누리그는 학교 자치 리그인 만큼, 학내 구성원이 직접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매년 초와 말 각 팀의 대표자가 전원 참석하는 총회를 통해 스누리그의 운영을 총괄하는 사무국장을 선출하고, 예산을 결의하며,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토론을 합니다. 심판 또한 스누리그 구성원 사이에서 지원자를 받아 경기를 진행합니다. 


 제가 야구 심판을 처음 접하게 된 곳이 바로 스누리그였습니다. 제가 야구 동아리를 막 시작하던 2009년, 당시 스누리그의 심판 제도는 앞 경기 혹은 뒷 경기 팀에서 심판을 봐주는 형식이었습니다. 야구 규칙에 나름 자신 있었던 저는 그렇게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아닌, 제삼자의 경기의 심판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의 경기에서 심판을 보던 것과 제삼자의 경기를 심판하는 것을 정말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심판이라는 자리가 정말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여러 이유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심판이라는 자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심판을 처음 할 때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 큰 사람이 있는 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했고, 또는 고전하는 팀에게 좀 더 유리한 판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친한 사람이 많은 팀에게는 평소보다 더 깐깐한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판정을 내리면서 감정에 이끌려서는 안 되는데, 미숙했던 당시에는 위처럼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규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프로야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플레이들의 경우엔 별문제 없이 판정을 할 수 있었지만,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규칙책에서만 볼 수 있는 정말 희한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홈플레이트를 밟고 타격을 하는 타자, 인필드 플라이 상황에서 야수가 공을 잡지 못하자 지체 없이 달리는 주자들, 선수 교체 방법을 모르는 감독 등등...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포수가 투구를 놓치거나 제대로 잡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라이크도 볼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지금 제가 기억나는 저의 가장 큰 실수는 이동식 베이스가 정위치에서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프로야구에서는 주루에 의해 베이스가 떨어지는 경우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고정식 베이스를 사용하지 않았던 스누리그에서는 슬라이딩에 베이스가 정위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잦았죠. 당시 저는 주자가 정위치에서 벗어난 베이스를 밟지 않고 있었다는 이유로 주자에게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야구 규칙에 따르면 정위치에서 벗어난 베이스를 점유한 주자에 대해서는 수비가 어떠한 플레이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즉, 주자가 원래 베이스가 있던 자리에 베이스를 밟지 않고 서 있더라도, 수비는 그 주자에 태그를 해도 아웃을 선언할 수 없습니다. 큰 실수였던 것이죠. 

 

 세 번째로는 심판은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자리지만, 저는 그런 자리와는 정말 거리가 먼 '관종'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심판을 잘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매일 규칙책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고시 공부를 야구 규칙책 보듯이 공부했다면 지금은 다른 미래를 마주하고 있었겠지요. 저는 제가 몰랐던 규칙을 알아갈 때 기쁨을 느꼈고, 그런 규칙을 공부한 덕분에 정확한 판정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안도했습니다. 자신감이 생기니 콜도 더욱 크고 목소리도 커져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경기에서 보이지 않아야 하는 심판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며칠 전 규칙책에서 본 A라는 규칙을 적용해보고 싶어서 억지로 끼워 맞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 이런 규칙도 알고 있다는 정말 나와서는 안 되는 자만감에서 나온 판정이었습니다. 또한 선수들이 잘못된 규칙을 알고 어필을 하면 대화로 설득해야 하는데, 저는 제가 가진 지식과 심판이라는 자리의 위계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선수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언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덕아웃에서 저의 판정에 불만을 가진 선수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러면 저 또한 냉정함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경기는 시간이 더 걸렸을뿐만이 아니라 매끄럽게 흘러갈 수가 없었습니다. 선수들은 애매한 상황 하나 하나에 항의했고, 저는 그 상황을 수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더 좋은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규칙을 많이 아는 것에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심판은 누적된 경험을 통해 각종 돌발 사고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적절한 대화의 기술을 활용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스누리그에서 심판을 하면서 좋은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왜 많은 경기를 해야만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봤습니다. 주변에 저보다 야구를 더 오래 한 사람들에게 의견도 구하고, 주장보다는 중재하는 방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스누리그에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때로는 야구 선수로, 때로는 야구 심판으로 주말을 보냈습니다. 학교에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중에는 연습, 주말에는 경기와 심판을 했고, 심지어 사회복무 기간 중에도 주말마다 학교를 갔습니다. 그리고 2013년, 저는 스누리그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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