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빈자리를 우리는 무엇이라 해야 할까

우리의 무능력으로 사료를 챙겨주지 못했던 날, 너희는 그렇게 떠났지

by 산처럼

아이 둘이 떠났다.

가슴이 아팠다.

허나 중요한 건

더는 이제 이 분들에게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기가 겁이 났다.

왜냐하면,

너넨 왜 맨날 했던 실수를 또 저지르고,

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그 지경에 이르는 거지?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맞다.

우리가 조금 더,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해야 했다.

분명히 그래야 했다.

우리가 부족했던 만큼,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갔다.


우리가 사료값 댈 수도 없을 정도로 서로에 커뮤니케이션에 미흡했다.


그 때문에, 유튜브에 우리 님들께 보일 수 있는 영상을 올릴 수도, 그런 영상을 만들지도 못했다.

그랬기에 우리에게는 아이들에 사료값 하나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로 일이 잘못되어갔다.


여집사는 3000원 현찰이 없어서 애들 사료 하나도 사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아이들이 하루 동안 사료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물론 아예 돈이 없던 건 아니고, 들어오기로 했던 돈들이 더 늦게 들어왔다.

그 때문에 여집사의 잔고에는 돈이 없었단다.

나 역시도 빚이 있고, 작은 돈조차 불려 나가려고만 생각해, 먼저 유튜브 수익으로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챙기고자 했다.


그 모든 게 사실 다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가 발리에 혼자 떨어져서 6마리 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여집사가 잘되길 간절히 바라기를 100번 쓰기에 담았더라면.


내 잠재의식과 100번 쓰기를 모두 동원해서 발리의 여집사가 '성공' 혹은 '부자'가 될 수 있게 끌어당김의 힘을 동원했더라면.


분명 여집사가 이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진 않았을 거다.


왜 나는 그러지 않았던 걸까?

첫째는, 우리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안됐다.

오늘 두 시간가량, 두 아이가 떠났고, 그 아이들로 인해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는지 토로를 하고 나서야 그동안 여집사가 나에게 서운해왔던 점들을 토로했다.

하나 그것도 따지고 보면 다 나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영상을 보내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고, 여집사는 구글 포토와 테라 박스를 통해 URL을 만들어 앨범을 공유해주었다.

하나 그 URL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구글 포토 계정을 3개를 만들어 셰어 했다고 하나, 그 모든 게 와 있지도 않았다.

안타까웠다.


둘째, 그러다 보니 여집사도 할 만큼 했다 생각했고, 나 역시도 영상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보내주지 않아 서로 간에 소통이 계속 불통인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머니 사정이 텅 비어버릴 정도로, 아무런 수입이 들어오지 못했다.


그 때문에 피해는 아이들이 입었다.


너무 심각했다.

노을이와 깜장이가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지 않게 됐으니까.


우리로서는 가슴에 멍울이 들고, 앞으로 더는 구조활동이고 뭐고 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홀썸이가 꾸따의 숙소에 갔다가, 밖에 나간 뒤 개에게 물린 듯 왼쪽 허벅다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왔었다.

설이가 야생에 놓여 범백으로 그 삶을 마감했던 일. 이때 타코도 구토를 하며 기생충을 뱉어냈었다.

노을이도 항문에서 기생충이 나오며 설사를 했었다.

그 후 담장이 있던 집으로 이사 간 뒤에도, 타코가 무언가에 물어뜯긴 듯, 가슴에 피로 물든 상처를 달고 왔던 일.

새해가 왼쪽 눈의 안구가 터질 정도로 다쳐왔던 일.

이 모든 게 다 야생에 그냥 그대로 놓여 있었던 일들 때문이었다.


물론, 이 모든 순간들에 있어서 우리가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문을 닫고, 싱가포르산 뜯김 방지 그물을 쳤다, 그리고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으로도 이사를 갔었다.

하지만 그 모든 와중에 아이들은 우리의 기대를 모두 뛰어넘었다. 뜯어지지 않는 그물이라 여겼던 건 애들이 보란 듯 물어뜯었다. 그리고 구멍을 내어 즐긴다는 듯이 구멍 사이로 지름길을 만들어 빠져나갔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돌아오곤 했다.

구멍이 난 그물을 다시 타일 끈으로 매듭을 짓고 지어봐도, 또 다른 구멍을 내곤 했다.

그리고 2.5m 담장도 발 디딜 곳을 찾아 뛰어넘어 다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100% 가둘 수 있는 캣 파티오였다. 캣 티오라고 불리는 그것.

하지만 우리처럼 여행자이고, 남의 집에 세를 내어 사는 우리로서 과연 그런 캣 티오를 맘 놓고 만들 수 있을지 갸우뚱했다.


그리고 계속된 사료값과, 스트레스들. 그리고 나 자신의 잠재력이 아이들을 돌보는데만 든다라는 개인적인 우울감에 한국으로 몸을 향했기에 캣 티오를 직접 만들어보려고 시도해볼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 고통들은 모두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물론 여태까지 아이들을 예쁘게 잘 돌봐줬다고 자위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딴 식으로 아이들의 죽음을 희석시키고 싶지 않다. 그들이 우리를 떠났던 건, 우리가 소홀했으며 부족했으며 무능했다는 점을 오롯이 깨닫고 싶다.

왜냐하면, 그래야 더더욱 진하게 반성할 테니까. 지금 흘린 눈물들과 한탄과 슬픔과 괴로움. 그 모든 것들을 오롯이 느껴야, 노을이와 깜장이의 빈자리가 가치 있게 채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1시간가량 격렬하게 고통으로 몸부림쳐야 했던 시간들. 쥐약을 먹었던 건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보는 앞에서 강렬히 고통스러워하며 떠나, 우리의 뇌리에 잔상을 남겼으니까.

그 한 시간 동안 그들이 아파야 했으며, 그들이 원망했을 것이며, 우리를 미워했을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고통을 느껴야 하느냐고.


그런 아이들의 마음, 그런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그 아픔들을 내 오롯이 다 껴안고 싶다.


아픔은 스승이고, 그렇게 아픔을 껴안으면 다시 내가 뭔가를 배울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들의 빈자리가 분명 나를 성장시키고, 더 많은 세상의 아파할 그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그 어떤 무언가로 보상되어 돌아올 테니까.


더 오롯이 아파야 했다.

그리고 더 치열하게 반성하고 싶다.


더 치열하게. 너무나 치열하고 치열해서. 도저히 그 어떤 빈틈도 없이 모든 것을 반성해낼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다음에 그 어떤 생명도 우리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안에, 아픔을 겪지도, 슬픔을 겪지도 않게 하고 싶다고.

그 짧은 생들이 더는 슬프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우리가 발리에 살면서 배우고 얻었던 것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대로 포기를 해서는 안된다.

일 년 동안이나 우리가 노을이와 깜장이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빈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보상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다.


발리에는 수많은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로드킬로도,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간다고 한다.

여집사가 실제로 알고 있는 로드킬이 빈번 지역에는 아기 고양이와 강아지가 계속 그렇게 죽는다고 한다.


중요한 건 문제를 발견하고 나서 이를 그냥 '어쩌지' '걱정스러워' '슬퍼' 등의 감정적인 위로만으로 해소되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이성적으로 해결해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난 적어도 그러고 싶다. 감정적으로 내가 위로만 한다고,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사라졌다고 그 진정한 문제의 본질이 뿌리째 뽑힌 것은 아니니까.


언제든 다시 문제는 고개를 들 것이고, 우리의 삶을 위협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문제의 본질을 추적해 들어가 길 좋아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가, 문제 해결사로 사는 게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이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더 반성해야 하냐는 것 아닐까.


하지만 조금 걱정이다.

이 이야기들을 유튜브에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무섭고 겁이 나며, 많은 사람들에게 또 슬픔과 실망을 안겨줄 것 같아 너무도 두렵다.


최근에 배운 나폴레온 힐의 모든 노하우 덕분에

걱정과 두려움이 인간의 잠재력을 꺾는 가장 좋은 악마의 속셈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의 한쪽 구석은 조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허나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느끼고 마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스스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고양이들을 보면서, 구조한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건.


지금이라도 남은 아이들이 계속해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연에게 부여받은 그 생이

16년을 가던 그보다 짧든 간에. 그 삶 동안만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이런저런 아픔 없이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여집사가 지내는 그 집들이 여기로 이사 가던, 저리로 이사 가던 번잡하지 않고, 한 곳에서 오롯이 건강하게 예쁘게, 아름답게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여집사가 그곳에서 오롯이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듯 틔워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피워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틔워낸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더 알아듣게, 쉽게, 좋게, 꼭 필요한 것들 위주로 남겨야겠다.


물론 홀썸이네 유튜브 계정은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가장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은, 그 유튜브 채널에서부터 수익이 발생해 아이들의 사료가 해결된다는 점.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게 해 준 그 집의 주인과 여집사가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게 만드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는 인도네시아 혹은 발리 현지를 머무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 모두가 동물들이 인간을 얼마나 껴안을 수 있는지 이해해, 동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를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거기까지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온전히 상상할 수 있고, 생생하게 꿈꿀 수 있다면. 그리고 이를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서 실제로 실현시켜 나갈 수 있게 된다면.

그를 통해 몇 마리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다면. 그리고 더 많은 웃음과 기쁨을 피워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저 고양이 별로 떠난 노을이와 까망이의 원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감히 기대해본다.


우리의 부족함으로 미처 지키지 못한 아이들에게

나의 모든 용서를 바라며.

내가 조금은 더 나은 너희들이 아빠가 되겠노라고

슬픈 다짐을 해본다.

미안하다.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남겨주어서.

격렬히 아파하는 그 한 시간 동안, 열심히 품어준 여집사의 손길에, 마지막에 조금은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그리고 함께 한 시간 동안, 우리에게 웃음과 소중함. 그보다 더 많은 기억들을 남겨주어서.

그 모든 게 다 고마웠노라고.

그리고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게 아픔으로 깨닫게 해 주어서 고맙노라고.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허나 미안하다고.


잠재의식과 끌어당김의 힘을 모두 써서라도,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가게 해 주겠다고.

사실 과연 이제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해보겠노라고.

미안하다고...

용기를 달라고 기도를 해서라도, 해봐야 할까.

너희를 잃고 외양간 고치듯 외쳐대는 나는 부끄럽다.

감정적으로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싫다는 나는 또 이렇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너희에게 용서를 바라니까.

부끄럽게도 말이지.


막막하고, 막연하다.


하지만 100번 쓰기와 잠재의식의 힘, 끌어당김의 힘과 기도를 믿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그것들을 상상해보련다.

그러면 오겠다고 믿으면서 말이지.


'여집사는 발리에서 모든 잠재력을 싹 틔웠다.'


'여집사가 돌보는 그 모든 아이들이 본인의 삶 동안 오롯이 아름답게 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얘들아.

이 미련한 마음은

너희들이 떠나고 나서야

더욱 보고 싶어 하는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더 큰 사람이 돼서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은 아이들에게 삶을 주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감히 바라기에는 또 화가 나려 한다.

이런 비겁한 나 자신에게.

이제야 꿈을 또렷하게 꾸려는 나의 비겁함에게.

너희를 잃어야만 했던 나로서는

나를 조금 더 잔혹하게 꾸짖고 싶구나.

이렇게 쉽게 우리 자신을 용서하기에는,

너희들이 겪었을 아픔이 너무도 잔인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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