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와 까망이가 쥐약을 먹었던 이유

벼농사 시즌이라 쥐약을 놓았다고 한다.

by 산처럼

여집사가 숙소 주인분에게 문의를 했나 보다.


왜 노을이와 까망이가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어째서 집 주변에 쥐약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여집사가 머무는 숙소 소유주의 답장


해석하자면

1. 지금은 벼농사 시즌이라 수확이 시작될 예정이다.

2. 그래서 벼농사를 하시는 분들이 쥐를 잡기 위해 약을 놓았다.

3. 고양이들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아이들을 죽인 게 아니다.

4.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5. 아이들이 쥐약을 먹은 쥐를 갖고 놀다가 이런 일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6. 이 모든 사실을 이해하길 바란다.




지금이 벼농사가 시작될 시즌이라는 점.

아이들이 나가서 놀았다간 쥐약이 있는 쥐를 사냥해 죽을 수도 있다는 점. 이를 미리 알고 아이들이 나가지 않도록 두었더라면 괜찮았을까?

라고

누군가 '벼농사가 시작될 시즌이니 당신의 고양이들을 집 안에 꼭 두기 바란다'라고 이야기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혹은 쥐약을 쳐놓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점을 누군가 인지시켜주었더라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폴레온 힐이 말했듯,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그 복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집주인에게 계속해서 감사를 말했더라면, 집주인이 이 같은 사실을 말해줬을까? 혹은 누군가가 이를 이야기해줄 운이 따랐을까?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타코(둘째), 홀썸이(첫째) 모두 이 쥐를 갖고 놀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야생성이 정말 강한 타코는 쥐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확률이 크니까.

홀썸이 역시도 사냥을 할 줄 아는 녀석이기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 떠나게 되더라도, 이 사실은 알려야겠다.

쥐약을 놓는 시즌이 있으니, 이때에는 아이들을 잘 보관해두어야 한다고

혹은 아이들이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두어야 한다고.


캣 티오만 한 방법 말고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집과 연결한 캣 티오를 만들어두면 아이들을 안전하게 둘 수 있다. 지낼 수 있다.




벼농사 시즌에만 아이들을 밖에 두지 않는다고 해서, 벼농사 이후에 독약에 중독된 쥐를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을 거다.

집 밖의 모든 야생의 것들은 분명 아이들에게 위협이 됐다.


고양이. 아이들이 마음에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 몰랐다. 하루 이틀을 펫 로스 증후군에 우울감과 분노, 울먹거림, 죄책감 자책감 등에 계속해서 시달려야 했으니까.

아이들의 목숨이 사라진 것도 문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람의 삶이 흔들린다.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린다.


우울감과 분노, 걱정, 아이들에 대한 보고 싶음과 트라우마로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진다.

그게 굉장히 문제다. 너무 심각한 문제다.



난 이틀을 걸려 글을 써내느라 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신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양이 유튜브 채널을 갖고 있어 라이브를 켜면 수십 명의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덕분에 함께 울 수 있었다. 집사님들 역시, 떠나보낸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셨다. 본인들도 힘든 시간들을 겪으셨다는 것을 느끼니 이런 좌절스러운 느낌을 혼자서만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마음이 치유가 됐다.

복수가 차올라 아이를 안락사시켜야 했다는 한 아이의 이야기, 내가 안락사를 시킨 게 잘한 건지 잘 모르겠다며 마음속에 갖고 있던 답답함을 토로해주셨다.

아이가 고통 속에 계속 있는 것보다 오히려 고통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면 안락사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

불가에서는 삶도, 죽음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Nirvana. 즉 열반이 바로 가장 이상적인 세계라고 했던 불경 구절이 생각난다. 태국 템플스테이 하면서 읽었던 경전의 말들이 또 내게 힘이 되어준다.

위 생각을 전해드리자, 감사하다고 하셨다.


반려동물이 중요한 것은 그의 존재가 인간의 마음에 커다랗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단지 '동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하등 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외로움 슬픔 괴로움을 모두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 인간이 해줄 수 없는 모든 사랑과 관심, 온전한 보살핌을 인간에게 자신의 삶이 허락하는 한 무한히 줄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 첫째 홀썸이와 타코가 걱정스럽다.

어찌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만남에는 늘 이별이 있는 듯하다.



만남의 순간 속에서 늘 이별을 떠올리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것은 중첩 상태에 있다는 양자물리학적인 이야기도 생각난다.

만남에는 이별이 있고, 삶에는 죽음이 모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할 사람들은 이를 꼭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반려동물을 받아들이게 되어 기쁨만을 간직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런 새로운 만남 뒤에는 반드시 아플 준비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하며, 보상이 존재한다는 에머슨의 보상 법칙도 떠오른다.


그들이 훌쩍 떠난 빈자리는 앞으로 어떤 가치들로 채워질까.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로 채워야 할까.

새로운 생명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생태계, 혹은 교육정보를 공유해야 할까?


유튜브 영상에,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교육적인 정보를 담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Please don't let them outside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노을이와 까망이의 죽음을 담아, 다른 발리의 반려동물 소유자들 혹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이를 조심하라고 알리는 일. 미리 원치 않는 죽음과 이별을 피할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글을 쓰니 또 어떤 식으로 가치를 담아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글의 힘에 또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너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나에게 모든 아이디어를 나눠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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