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승을 글에 담다보면

글이 나의 삶을 밀어줄 수 있을까

by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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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에

나를 쉼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들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게 만들었던 나는

분명


그 삶의 순간에

글쓰기가 있었다.

에버노트든, 무엇이든

그때그때 사용했던 플랫폼들은 달랐다.


하지만 내가 공통적으로 했던 행위 하나는

지독하게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갔다는 점.


그렇게 한참을 써 내려갔던 시간들 속에

나는 분명 내 안에 열정을 키웠고

내 마음이라는 순간들에

가장 나다울 수 있었으니까.


그 순간들을 시간이 지나서도

마치 새롭다는 듯 깨닫는 내가

조금은 안타깝다.

이렇게 좋은 기술을 그다지도 모른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만

여전히 나는 내 삶에 서툴고

서툴러서

이토록 열심히 써내야 하는 사실들에

버벅 거리 듯 소화시켜내고 있으니까.


어찌 보면 나는 조금 더 내가 떠는 청승에 자유로울 필요가 있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감정들의 뒤범벅을 글에 담아

사람들에게 팔았고

명성을 얻었으며

보다 더 자기 다운 스스로를 가질 수 있었다.

여행자로, 시인으로, 백수에서 그 무언가로.


내가 내는 푸념이나

슬픔이나

아픔이나

담담한 독백이나

복잡한 마음이나

그 모든 순간들에 내가 있었고

이는 글이라는 매개체로 담을 수 있었다.


그게 굳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이거나

'내가 여기 있었소'라고 말하는 낙서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니, 지금 내가 열심히 써대는 이 글이 바로 낙서일까.


낙서가 팔릴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줄 수 있을까.


어찌 됐든

그 글이 부끄러워지지 않는다면

그 마음을 담아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엮어 책으로 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나 자신의 청승에 조금 더 뻔뻔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청승이 나의 목소리이고

나의 생각이며

나라는 존재가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우주 속 먼지 입자이면서도

실체화된 그 무언가니까.


누군가가 아닌

우주 속의 작은 먼지인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이 글조차도 부끄럽지만

일부러 나의 부끄러운 구석을 내보여본다.

세상이 무어라 할지

어떻게 표현할지 그 모든 게 너무도 궁금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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