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나도 살고, 더 많은 생명을 살리게 되는 내가 되지 않을까
참 감사했다.
반려동물의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면서
한 책을 만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운 것들이 정말 크다.
명상이라는 건 우리가 하는 일상에서 느끼는 명상이 크다.
내가 하는 행동,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는 그 생각 알아차림.
그게 바로 명상이라고 한다.
그 명상의 마음이 나에게는 조금 부족했었다.
나는 더 아파야 한다고.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하지만 한 책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나를 떠난 아이들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사랑을 이제는 내려놓으라고.
또 계속해서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계속해서 아프게 하는 자기 비난(Self-criticism)과 자기 학대적 생각은
내가 오롯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꺾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비난이 아닌 자기 자비(Self-compassion)로 스스로를 안아주라고 한다.
Compassion을 풀어보자면, Com 은 '함께', ' 같이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Passion은 라틴어의 'Pati'에서 왔다고 한다. Pati는 'Suffer' 즉 정신적 고통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를 풀어보자면 '함께 아파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라.
모지게 채찍질하는 게 아니라, 안아주는 마음. 그게 바로 Self-Compassion 이 아닐까.
나는 아빠로서, 발리 식구들을 제대로 못 챙겼다는 마음에 마음이 미어졌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굉장히 채찍질했다. 아무리 발리의 여집사가 애들을 잘 케어하고 있다고 한들,
나도 어느 정도는 신경 쓰고 있었어야 했다면서. 그리고 고양이 채널을 활성화시켜
여집사가 어느 정도 그 어깨에 진 무게를 덜어냈어야 했다면서.
나는 조금 더 잘했어야 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렇기에 완벽하지 않다.
나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완벽하지 않다.
실수를 했다.
이런 실수를 뭐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그저 나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또 배워나가는 일 말고는 다른 선택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와중에 하나 배울 수 있었던 건,
내가 나를 가혹하게 대하면, 내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이 싹트고, 그 마음이 정신을 아프게 만들기 시작한단다.
나는 내 정신까지 파괴해가면서 아이들을 잃었다는 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이 작은 고통들 또한 껴안으면서 내가 더 한 뼘 자라기를 바랐을 뿐.
실수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나를 자학하거나 가학 하는 생각으로까지는 번지지 않게끔
내 마음에 자라나는 잔인한 씨앗은 알아차려야 했다.
그러나 성장은 채찍으로 오지 않는가 보다.
성장은 껴안음으로, 이해함으로 오는가 보다.
요즘 사람들 역시,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
그리고 연애를 하며 많은 사랑을 나눠주고 또 받는다.
그 와중에 상실이 생기는 건 당연하며, 소중한 무엇인가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분명 존재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어떻게 상실을 받아들여야 할지 배울 수 있던 점은
또 누군가 아플 때면 그를 위로해줄 수도,
지금의 내가 나에게 그러했듯, 그 사람을 위로해주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노을이와 까망이는 내게 있어 감사다.
그 아이들이 내게 준 사랑은 그대로 감사다.
그 아이들이 떠나서도 내게 준 것은 가르침이고 감사다.
내가 얻은 것들이 이렇게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