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셋째, 둘째야...

떠나버린 두 아가들

by 산처럼

빌라 키티서 집으로 돌아오며


하루 종일 곁에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둘째는 몸의 흔들림이 쉬지 않고 커졌다.

가만히 서있지 못했다. 쉼 없이 비틀거렸다.

이미 귓속 균형감을 잡는 기관이 상했을까.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 지켜보니

코와 눈구멍, 귓구멍 사이로 희끄무레한 끝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다.


구더기였다.

빼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이 꺼져가는 게 눈에 보였다.

아이의 몸짓에서 그 고통스러움이 전해졌다.

마음이 다급하고 또 아팠다. 마땅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구더기들을 빼내려 했다.



아이들의 눈, 코, 귓구멍은 너무나 작았다.

우리가 '작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핀셋으로는 되려 상처가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


구더기를 빼내기 위해 몸을 거꾸로 뒤집기도 했다. 면봉이나 아주 작은 포크를 가져오기도 했다.

우리는 이 작은 구더기를 빼내기에 조금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했다.


차라리 입으로 빨아들이면 구더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구더기도 나가면 죽는다는 걸 아는지 목숨을 걸고 그 안에서 끈질기게 버텼다.




바늘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시간만 보낼 수 없었다.


바늘은 아주 조금이라도 잘못 놀렸다가는

갓난아기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아이를 잃을 수도 없었다.

그럴 바에 이제는 바늘을 쓰는 게 차라리 아이를 살릴 수 있을 확률이 더 커 보였다.


구더기가 있는 콧구멍에서 조금 올라가 3-4cm 위에서 콕콕 면봉으로 누르면

조금씩 구더기의 몸이 밀려 나왔다.


그 틈에 번데기 찌르듯 구더기 끝을 낚아챌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나마 바늘이 닿을 수 있는 녀석들은 꿰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던 걸까.


결국 딱딱하게 굳어버린 아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고작해야 하룻밤을 함께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조금은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린 걸까


둘째가 마치 머릿속 무언가를 괴롭듯 털어내려고 하다

결국 딱딱하게 굳어버렸을 때


입모양은 울상이 되었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숙소 뒤뜰에 묻어둔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들 뿐이구나

둘째와 셋째.


숙소의 주인분에게

'이 숙소 정원에 묻어도 될까요' 물었다.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러라 끄덕였다.







그 고통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곰곰이 셋째가 느꼈을 아픔을 떠올려보면

그 고통을 다 헤아릴 수 없어 가슴이 미어진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도 아닐 작은 미물.

하지만 한 생명이 감당해야 될 고통 치고는 너무나 크지 않았을까.


개미에게는 귀 끝, 발가락 끝을 물어뜯기고,

속에는 구더기가 생살을 계속 씹어먹는 느낌이라니...

글로 옮기기에도 끔찍하고 지옥스럽다.

대체 그 고통을 전부 다 헤아릴 길이 없다.


더 이른 시간에 너희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 사람 많은 곳, 분명 우리보다 너희를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 누구도 너를 쉽사리 도와주지 않았던 것은 왜 일까




떠나간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지금도 가슴이 아프지만, 그때는 ‘차라리 너희들을 알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아프지 않았을 텐데…’하고 가슴 아파했었다.

너희들을 좀 더 일찍 찾아냈었더라면, 그 고통에서 풀려나 지금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네 형제들이 나란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살아남은 첫째


첫째만이 살아남았다.


처음부터 바늘을 썼더라면


너희들을 다 살려낼 수 있었을까?



그 울음소리도 유난히 남달랐던 녀석이, 살아남았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 친구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던 사람.


당시 '시크릿'류의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다녔던 우리.


우리가 바라는 삶을 입으로 읊어대며, '잠재의식'의 힘을 내심 믿어댔다.


그리고 그 삶의 모습을 늘 입에 닳도록 외우고 다녔다.






꼭 쥐고 있는 여자 친구의 손이 마치, '이 아이만은 잃을 수 없다'라는 마음을 말하는 듯했다.

그녀의 꿈, 그중 하나

'고양이가 있는 삶'


그런 와중에 만난 이 녀석은 조금 놀랍기도 했다.

그녀가 바라고 바라던 때에 나타나 주었으니.



나는 고양이를 그토록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동물과 자연을 좋아하던 사람이다.

동물과 자연이라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좋아했다.

그러니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보호소에 맡기기도 어려우니...


이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 Villa Kitty도 이 우붓에서 가장 크다.

믿을만한 곳.

하지만 이미 데리고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너무 많아 아이들을 내맡기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미 내부에 범백 바이러스(Panleucopenia)가 퍼져있어

많은 작은 고양이들이 소리 없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그런 곳에 아이를 두는 것보다 우리가 버텨낼 수 있는 동안은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홀썸이'라는 이름


이 아이에게 건강하고 온전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홀썸(Wholesome)’이라고 지었다.

뒤늦게 바늘을 사용한 덕에 첫째의 구더기를 다 빼낼 수 있었다.



우리는 '건강 음식, 진짜 건강한 삶'을 찾고 싶어 Wholesome이라는 영단어를 좋아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Wholesome Nomad라는 이름으로, 커플 계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여기에 '자유와 건강'이라는 가치를 담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Wholesom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건강하고, 완전하며 세상에 좋은 존재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우리 사이에 아기 고양이가 함께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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