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조리사 vs 퍼머컬처 디자이너, 내게 맞는 것은 무얼까
이곳에 있으니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에 휩쓸릴 때가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알아차림, 호흡에 가장 중요성을 두고 현재에 깨어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하루 2시간의 위빠사나 명상이 그나마 제 알아차림,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들이 몸에 습관처럼 붙어있도록 유지해주는 듯합니다.
불교와는 관련 없이 살아온 지 30년째, 위빠사나를 알게 된 이후부터 갑작스레 절간에서 지낼 수 있는 접점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러다 이곳 천진암 스님께서 사찰음식, 음식으로 사람의 몸을 치유하고 그 자연의 약성을 잘 발현시키도록 가르쳐주신다기에 온 인연. 이 모든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주로 모두가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요리에 관해 이런저런 말씀들을 드렸어야 했을 텐데
요리보다는 '선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보니 정작 요리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제 마음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퍼머컬처를 해나가면서 자연만으로 땅을 가꾸고 길러, 오롯이 자연이 주는 힘만으로 식자재를 만드는 일을 해나가고 싶다.'라는 말도 못 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만, 지나가다 오다가다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으니 또 괜찮겠구나 싶은 생각도 합니다.
수십 년 동안 다르게 살아온 서로가, 오해 없이 공동체 내에서 잘 지내기 위해서는
왜 저 사람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그 뒤에 있을 마음들이 다 읽힐 수 있게 말이죠.
그랬을 때, 불만스러운 행동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러면 서로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마찰도 이해를 통해 줄여나갈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지낼 수 이룰 수 있는 조화로움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서로의 마음을 가장 진실이 알 수 있는 단서들을 알아내는 게 가장 좋은 거겠지요.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거니까.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건 서로가 조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마음일 테니까.
그래서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온 사람이 선배다. 절의 군기는 군대보다 심하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상당히 부담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겪었던 군대 문화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인격 살인이 쉽게 자행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제 피부와 무의식 속에 군대라는 곳은 굉장히 잔혹한 측면이 많은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절의 문화는 그런 군대보다 더 심하다'라는 말씀을 직접 들으니 여기서 오래 지내려는 마음을 다시 돌이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조리 업종에서 일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폭력이 한 자아를 무너뜨리기 가장 좋은 방법이고, 이 같은 폭력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 상명하복의 특성을 지닌 조직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참 흔들리는 말씀이셨습니다.
하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엄격함을 강조하고자 그냥 하셨던 말씀은 아니셨을까 헤아려봅니다만, 지켜봐야겠습니다.
자연의 법칙 안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억누르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니즈에 맞물려가며 생태계의 시스템이 번창하고 돌아가도록 되어있는 점에서 보자면 폭력보다는 조화와 상생이 올바른 개념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 안에서는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는 섭생이 있고, 일종의 '폭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훼손하는 일은 서로의 번창을 위해 좋은 게 없으니 자연에서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인간 사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엄하고 혹은 폭력적으로 짓누르는 문화 속에서 살아갈 일을 선택할 바에는 보다 '자연'스럽고 혼자서 고민할 수 있으며 남을 억누르는 데서 오는 불편하고 폭력적인 공기가 없는 일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자급자족, 혹은 정말 자연이 갖고 있는 그 힘을 그대로 갖고 자라난 건강한 채소들을 길러내고 싶습니다. 열쇠형 디자인으로 설계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리고 흙을 더 비옥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이아의 정원'을 읽어보며 더 세부적으로 정리해나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다년생 식물들을 하나씩 심어가며 뿌리를 깊이 내리고, 더 많은 이파리, 가지, 줄기 등 바이오매스를 많이 만들어 흙을 장기적으로 비옥하게 만들 수 있는 계획도 머리에 스쳐갑니다.
요리법을 배워 제 삶에 써먹는 일은 좋으나, 업장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스트레스받아가며 기계적으로 음식 만드는 일이 과연 제 성미에 맞을지 의문스럽거든요.
물론 위빠사나를 해나가며 에고를 깎아나간다면 그 모든 일들이 쉽겠습니다만, 하루아침에 모든 에고를 다 녹이고 통찰과 깨달음으로 가득한 부처님이 되는 일이 쉽게 이루어질 리 만무하니 조금 고민이 듭니다. 과연 사찰음식 조리사로 커리어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괜찮을지 말이죠.
건강하게 먹고, 마시는 일은 좋아하나 그 과정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줄여가는 일 역시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지켜봐야겠습니다.
답을 알게 되겠지요.
'내가 자유롭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하루 종일 멧돼지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가는 길을 만드느라 지친 몸을 누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