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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입니다 Oct 16. 2021

지속 가능한 닭장을 짓기로 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실험적 닭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sketchup을 통해 수탉 2마리인 닭 무리를 어떻게 나눌지 구상해보았다. 회전하는 게 제일 어려운  



60일간의 절 생활을 마치고

'아 난 요리보다 이 자연을 키우고 가꾸며 사는 게 훨씬 좋구나'라고 되뇌었다.

수많은 스트레스, 수많은 괴로움, 지쳐나가는 일들.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빠지지만, 

절대로 기쁘지 않던 시간들을 보냈다.


아무렴 시간은 시간대로 노동은 노동대로 하지만 그 시간들이 과연 내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간들이었는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마음속에 퍼머컬처를 해야겠다고 자리 잡고 있던 상황.

하지만 절에 있으며 시험받았던 시간 동안 좋았던 점은,

내가 요리와 퍼머컬처 중 어느 한쪽을 포기할지, 계속해서 파고들어들며 나의 모든 에너지를 다 바칠지를 (모순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것에는 좋은 점과 그른 점이 공존한다는 나폴레온 힐의 말이 스친다.


절 생활은 매우 고단했지만, 60일간의 시간은 


'난 퍼머컬처를 해야 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고단했던 절 생활을 되돌아보자면 분명 그 시간들 속에 내가 배웠던 손기술, 음식을 보관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일을 할 때 제대로 해나가는 법들 등을 배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모든 대가는 엄격하다.'던 로빈 샤르마 ('5AM 클럽'의 저자이자 전 세계 다섯 손가락 중 한 명에 꼽히는 리더십 강연가)의 말처럼, 스님의 요리 솜씨는 매우 엄격했다.

그리고 그 밑에서 하루 약 10시간 이상 붙어 계속해서 일을 하다 보니, 60일이지만 약 600시간 동안 어떤 식으로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배울 수 있었다. (먹는 시간도 스님의 매서운 눈초리로 식탁 예절과 밥그릇을 치우는 요령까지 모두 익혀야 했던 시간)


그런 시간들을 뒤로하고, 


퍼머컬처를 하며 살아야겠다고 알아보고 있는 요즘,


귀농 귀촌 혹은 귀산 청년, 또는 귀농 후계자 임업후계자로 퍼머컬처를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퍼머컬처를 하는 건 좋다 치더라도, 일단 먹고 살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했다.

임업후계자든 청년농업인이든 간에, 둘 다 내 돈이 아닌 정부가 빌려주는 돈을 빌어다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빚은 일단 매년 불어나 내 발목의 족쇄를 채우고, 내 자유를 조금씩 빼앗아가는 무서운 존재임을 경계하기에 선뜻 귀농, 귀산을 해내려니 답답하기만 했다.


양계장을 짓는 건 그를 위한 첫 발판이라고 볼 수 있다.


퍼머컬처 디자이너로 살아가려면, 나무와 풀의 섭생을 이해하면서 거기서 임산물을 생산해 팔거나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양계장을 내 손으로 짓는 건 왼 겨드랑이에 담석이 차올라 팔을 30도 정도밖에 들어 올리지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갑상선 항진증의 후유증으로 몸이 약해지신 두 분을 생각한 나의 마음이었다.

계속해서 단백질을 섭취하고, 소득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함.


이왕이면 품종계로 키우면 

소득에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이 섰다. 


지금 미국에서 건너온 '아메라우카나' 여러 마리와 청계 믹스를 포함 총 11마리 정도의 닭이 머물고 있다.

그중에는 청계 믹스를 포함 수탉이 총 3마리다.

수탉 두 마리 이상이 한 무리의 암탉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 서로 싸움을 하고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지나치게 암컷을 괴롭히는 행동 패턴을 보이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 두 닭이 서로 분리된 공간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약 7평의 공간을 둘로 나누기로 했다.


양계장을 만드는 일은, 목수일이라고는 군대와 막일일, 절에서 해본 약간의 못질과 망치질, 그리고 톱질이 전부인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놓으신 수많은 기계들이 있어 수월하게 7개의 지주를 만들어냈다.

끈을 매어 여러 개의 작은 막대기로 테두리를 잡아 기둥을 세울 때 서로 제 위치에 똑바로 설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었다.

나무 지주의 밑바닥은 흙속에 파묻힐 경우 썩거나 삭아 금방 무너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밑부분이 닿을 자리에 벽돌을 깔아 흙으로부터 미생물 혹은 수분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깔아 두었다.


Bill Mollison의 Permaculture a Designer's Manual에 따르면 닭이 생활하는 곳에 나무와 작은 나무들을 빼곡히 심었다.


망은 구갑망(참새, 쥐, 족제비와 같은 소형 동물들이 통과할 수 없는 크기로 메꿔진 망, 쥐는 병아리를 헤치고, 참새는 닭들의 먹이를 빼앗는다.) 30M를 주문해놓은 예정(약 92,000원). 닭장을 짓고 남은 부분은 닭장 안에 키울 어린 묘목들을 보호할 테두리로 쓸 예정.


내부에는 펜스로 두른 나무를 심어 닭의 응가가 고대로 비옥한 비료로 작용하게끔 키울 예정이다.


이런 연습들이 계속되고, 또 기록한다면 내가 바라는 퍼머컬처 디자이너로서의 삶이든, 청년 창업농이든, 임업후계자든 언젠가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생계를 위해 소득을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선 더 많은 리서치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에 내가 얻을 수 있는 소득거리를 찾아볼 생각.

일을 하게 된다면 이왕이면 생태계 혹은 산의 생리를 직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 볼 생각.


또는 그 밖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정부지원을 이용해가며 계속해서 연습하고, 도안을 그리고, 200평도 안 되는 이 땅의 여백에 상당히 빼곡한 나무와 풀들을 심어나갈 예정이다. 하지만 곧 있으면 겨울이라 또 어떻게 해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해나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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