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는 살아가야겠지. 아직은 그녀의 흔적이 있지만(2)
개원을 할 학원 자리가 비워졌다. 두 달도 안됐는데, 어떻게 내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나는 미리 약속되어 있던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내부 수리에 들어갔고, 학원 로고 디자인도 의뢰를 했다. 동시에 알던 강사들부터 연락하기 시작해서 세 명의 간부급 강사를 뽑아 교재 생산과 내부 시스템을 만들었다.
최대한 빨리 학생을 받아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는 수리가 다 완성되기도 전에 책상을 들여놓고, 일단 학부모 상담과 홍보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책상이 들어오고, 임시 오픈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창수는 골프 치러 간다며 오지도 않았다. 나는 혼자 강사들을 모아놓고, 본인 자리 정리를 시켜놓고, 나도 내 책상을 정리했다. 그때 창수 아버님이 오셨다.
아버지는 학원을 한 바퀴 쭉 둘러보시더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봉투를 내미셨다.
“암튼 잘해봐. 창수 잘 부탁한다. 이걸로 옷이나 한 벌 사 입고, 오늘 회식해라.”
나는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담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아버님은 어깨를 두드려주시곤 나가셨다. 아버님이 가시고 난 뒤 열어본 봉투에는 500만 원이 들어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큰 금액에 숨통이 확 트이면서, 감사를 넘어 감동을 느꼈다. 역시 성공한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성공하고 싶었다. 그렇게 돈도 많이 벌고, 집도 사고, 마음만 강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님처럼 마음을 실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정말 잘되면 어쩌면 민영이가...... 여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밤마다 주식을 연구하며, 숫자들을 볼 때면, 부자가 되면 뭘 할까를 상상하다 보면 민영이를 생각할 때가 있었다. 돈이 없어도 나랑 결혼하고 싶다던 그녀였다. 내가 부자가 된다고 올리가 없었다. 그녀가 떠난 것은 돈 때문만이 아닌 것을 내가 잘 안다.
그런데, 그래도, 내가 돈을 벌면, 나 스스로가 좀 더 자신감이 생겨서 그녀가 원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병신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정말 병신같이 굴지 말라고, 상상도 하지 말라고, 이런 것은 민영이가 바라는 것이 아닐 거라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때리곤 했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오늘은 회식을 시켜줘야 할 것 같았다. 강사들을 모두 데리고 고깃집으로 갔다. 고기에 술에 노래방까지 놀아주며 정신 단합을 외치고 나니 밤이 깊었다.
강사들과 헤어져 뒤돌아 걸었다.
몇 걸음 걷다 보니 학원 건물 앞이었다.
학원에 들어가 불을 켰다. 인테리어 냄새와 새 가구 냄새가 났다. 학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긴장감, 설레임, 두려움에 어지러웠다.
창수 방인 대표이사 방 옆에 내 방인 원장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괜히 새 컴퓨터를 켰다. 그러나 어색해서 바로 발딱 일어났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문을 열자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뭔가 어색해서 생각해보니 ‘어서 오세요’ 소리가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슬쩍 점원을 보니, 어린 여자 점원이 핸드폰에 빠져 정신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음료수 코너에 가서 블랙커피를 집어 들었다.
카운터에 캔커피를 올려놓았다. 그런데 여직원은 계속 핸드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기요.”
나는 포스기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자 직원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직원은 당황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며 핸드폰을 내려놓고 계산을 했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 화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핸드폰 속 영상은 내 강의 동영상이었다.
작년에 학원에서 시험 삼아 동영상 서비스를 했을 때 찍었던 영상이었다. 저 영상을 보는 학생을 처음 봐서 엄청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여자 직원이 카드를 돌려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흠흠, 학생이신가 봐요.”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었다. 여자 직원이 멈칫하며 나를 곁눈으로 올려다보었다.
“흠흠, 열심하 하세요.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나는 부끄럽지만 괜히 으쓱해져서 말했다. 점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쏘아봤다. 나는 멋쩍어서 핸드폰을 손으로 가리키며 쑥스럽게 웃었다.
여직원은 이제 인상까지 쓰면서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저... 내가 저기 저 선생이에요.”
점원은 핸드폰을 보고, 나를 보더니 그제야 눈이 커지며 웃었다.
“어머, 최현욱 선생님이세요?”
“네. 헤헤.”
“어머나! 대박! 완전 신기해요. 얼마 전에 친구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요즘에 계속 보고 있었거든요. 우와!!! 대박!!! 학원 그만두셨다면서요?”
“거기 그만두고, 오늘 여기 5층에 새로 학원을 오픈했어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올라와서 물어봐요.”
“헐~ 대박! 학원 차리셨어요?”
“어! 아니. 그... 그렇지. 암튼 5층에 있으니까 질문할 거 있으면 와요. 공부 열심히 해요.”
“네, 또 오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가뿐한 발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괜히 쑥스러워서 바로 학원으로 가지 않고, 학원 근처 거리를 둘러보았다. 길가의 학원 간판만 보였다. 모두 경쟁 상대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학원 아닌가요?”
순간 학원 전화기를 내 핸드폰으로 착신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네! 맞습니다. 전단지 보고 연락 주셨나요?”
“네...”
“네, 감사합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아... 뭐... 그냥 이것저것 궁금한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떡하지? 무슨 말을 하지? 생각해보니 전화 상담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 저기... 학생이 몇 학년인가요?”
“중2예요.”
“네. 지금 중등부 담당 선생님이 퇴근하셨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내일 전화드려서 자세히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내일 한시쯤 괜찮으신가요?”
“네에... 그럼 안녕히 계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땀이 났다.
이제야 내가 학원을 운영하는구나 실감이 났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등록한 학생과 학부모만 만났었다. 등록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제일 중요한 학생 유치는 생각 안 하고 수업과 교재와 성적에 대한 상담만 생각하는 바보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니 학원을 유치하는 것이 일종의 영업상담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아... 진짜 내가 별걸 다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일은 이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든 학원에 등록하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부끄럽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 생긴 문제인 전화 상담 방법, 첫 방문 응대 방법, 상담으로 학생을 등록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더 걷다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포장해서 학원으로 발검으로 옮겼다. 문제는 바로 해결해야 했다. 게다가 답답한 고시원보다는 멀끔한 원장실에 더 있고 싶었다.
학원 건물에 도착하자, 물을 몇 통 사놓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 문이 딸랑거리며 열렸다. 아까 그 여점원이 돌아보고는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어. 선생님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좀 여쭤봐도 돼요?”
“그래요.”
여직원은 카운터 아래에서 책을 꺼내 질문을 했다. 나는 정말 정성을 다해 꼼꼼하게 설명을 해줬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고 고맙다고 했다.
내가 비록 상담 전화에 어버버 하는 답답한 면도 있고, 무식한 졸부 밑에서 굽신대며 일하고,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몇 달째 월급도 없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돈을 벌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미물에 불과하지만, 생각해보면, 서울대를 비롯해서 나보다 좋은 대학에 몇 명을 입학시킨 사람이다. 공부머리도 있고, 강의 실력도 있는 실력은 있는 강사인 것이다.
학생 하나가 내 강의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하나로 나는 자신감이 많이 충전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 대박이예요. 완전 귀에 쏙쏙 들어와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 또 물어보고... 그런데 몇 살이니?”
“저 21살이요. 헤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못 갔어요. 헤헤. 취직도 알아보고 했는데, 아무래도 대학 가야 할 것 같아서 알바하면서 공부 중이에요.”
“... 그래...”
알바하면서 수능 준비하던 10년 전, 삼수생이었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누구라도 날 도와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아이를 잘 가르쳐서 한 번 물건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너 우리 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일할래? 돈도 줄게.”
여자애의 눈이 커졌다.
여자애의 이름은 오윤서였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았고, 공부에 흥미도 없었던, 상업여자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 그렇게 고졸로 2년 살고 나서야, 정신 차리고 일단 대학 입학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합격도 자신 없고, 합격 후에, 등록금과 입학금 등이 걱정이라 사실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나는 윤서에게 공부하는 조건을 설명했다.
매일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할 것, 공부 계획을 학원 복도와 인터넷에 올릴 것. 대신 중식, 석식 제공과 조금의 용돈, 그리고 학원에서 원하는 대학에 붙을 시 등록금과 입학금 제공을 제시했다.
학원 역량을 보여줄 프로젝트를 시작한 셈이었다. 실업계 학생을 1년 만에 명문대에 보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학원의 면학 분위기 메이커로도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윤서는 무조건 하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중간에 그만두면 위약금을 요구할 것이라고 겁을 주면서 며칠 내로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윤서를 돌려보냈다.
나는 창수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하는 창수 목소리 뒤로 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최종 결제를 위해 창수에게 내 계획을 말했다. 창수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응응 거리기만 했다.
“야! 듣고 있냐? 어때? 내년 수시 생각하면 딱 1년이야. 1년 준비해서 명문대 보내기 프로젝트 괜찮아?”
“예쁘냐?”
창수의 첫 질문이었다.
“예쁘냐고? 음... 잘 모르겠는데? 못나진 않았어. 근데 그건 왜?”
“예뻐야지. 안 예쁘면 안 돼. 예쁘면 하고, 안 예쁘면 안 돼.”
“아... 뭐야. 그게 뭔 상관이야.”
“상관있지. 진짜로. 안 예쁜 애는 소용없어. 어차피 얼굴 마담이잖아. 무조건 예뻐야 해. 나중에 대학 합격 못해도 예쁘면 돼. 하지만 아무리 서울대라도 못나면 안 돼. 이거 진심이야. 못난 애면 난 허락 못해.”
나는 윤서 얼굴을 다시 떠올려봤다. 일단 날씬하고, 하얗고, 눈이 컸으니까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머리 기르고, 화장하고 그러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음... 예뻐, 아이유? 쫌 그런 스타일 같은데.”
“그래, 그럼 일단 공부는 매일 자습실에서 하는 걸로 하고.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sns에 사진, 특히 얼굴 사진 매일 올리고. 필요하면 미용실도 데려가고, 옷도 입혀, 이왕 모델 쓸 거면 제대로 해야지.”
“... 모델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한다고 할 거야. 시킬게.”
며칠 뒤, 나는 윤서의 어머니를 불러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학원이 오픈했고,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첫 달 수강생이 목표한 숫자보다 더 많이 모였다.
장부를 정리하니 약간이지만 창수에게도 입금할 돈이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창수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나는 창수에게 벼르고 있던 말부터 꺼냈다.
“창수야, 오늘 학원 와?”
“아니. 오늘은 애 봐야 하는데. 내일 낮에나 나갈까 했는데. 왜?”
“내일 나올 때는 츄리닝 말고 좀 깔끔하게 입고 출근할래?”
“왜?”
“그래도 학원이니까. 지난번에 학부모가 누가 츄리닝입고 돌아다니냐고 물어봐서 좀 난감하더라구.”
“흠... 야! 나 그냥 방 뺄래.”
“응? 무슨 소리야. 그러지 마. 니 학원인데 방을 빼면 어떡하냐? 미안해. 내가 잘 못 말했나 봐. 미안해. 상관없어. 어차피 학교도 아닌데, 야한 것만 아니면 편하게 입으면 되는 걸 내가 너무 꼰대처럼 굴었나 봐.”
나는 입이 바짝 말랐다. 창수가 방을 뺀다는 말이 혹시 학원에서 손을 떼고, 돈을 거둔다는 말일까 봐 겁이 났다.
“짜식 쫄기는, 강의실 하나 더 있으면 수익이 올라갈 거 아냐.
그리고 니 말대로 츄리닝 입고 가는 거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정장 입기는 더 귀찮거든.
그리고, 나 커피숍 차리려고, 학원은 갈 때마다 너무 불편해서 내가 못 있겠더라고. 커피숍 차리면 거기서 너랑만 미팅하면 되잖아. 귀찮게 내가 강사들 볼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내 방 빼서 돈 더 버는 데 쓰라고, 내가 뭐 너한테 학원 뺏겠냐. 새끼 쫄보 짓 하기는.
암튼 왜 전화했어?”
나는 셔츠 윗 단추를 풀었다.
“아... 첫 달 장부 정리했거든. 보여주려고.”
“그래, 일단 이메일로 보내. 어때? 수익이 있어?”
“어? 수익? 수익이라고 하기는 쫌 그런데, 분위기는 좋아. 다름 달 개강 맞춰 들어올 애들도 있고, 이런 분위기면 한 6개월 뒤에는 흑자 될 것 같아. 그리고 일단 네 통장에 입금할 거는 있어.”
“야. 너 흑자가 뭔지 알아?”
“어? 경비 빼고 돈 남은 것이 흑자잖아.”
“그게 아니거든. 경비 다 제하고, 1억 원금에 이자까지 입금하고, 너랑 나랑 임금까지 따 빼고, 거기에 몇 달치 예비비까지 남기고 나서 돈이 남아야 그게 흑자야. 들어간 돈이 얼만데 벌써 흑자니 뭐니 맘 편한 소리하고 자빠졌어.
정신 차리고 긴장 좀 해. 내 목표와 네 목표가 다른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내가 보기에는 오픈 빨도 생각보다 없구만 뭐, 난 좀 실망하고 있다고. 앞으로는 홍보 좀 팍팍하고 아줌마들 상대할 잘 생긴 남자 상담 실장도 뽑고. 참신하게 잘 해봐. 알았어?”
“어... 그럴게.”
“그래서 이번 달에 나한테 입금 얼마 해줄 거야?”
“니 말대로 수익이 얼마 없어서 일단 100만 원 입금하려고 했어. 뭐라도 입금은 해야지.”
“그럼 그걸로 직원들 단체 회식해.”
“어?”
“회식하라고, 어차피 100 받아서 내가 뭐하냐? 회식에 쓰고, 다음 달에 나한테 500 입금할 수 있게 분발하고. 알았지? 아 참. 그렇다고 니 월급 안 받고 하지 마. 니 월급은 챙겨야 니가 회사에 집중할 테니까.
그리고 뭐 다 들었으니까 내일 안 만나도 될 것 같네. 이메일로 장부나 보내고. 내일 말고 며칠 내로 얼굴 한 번 보자.”
“어... 어... 그래 그러자.”
전화를 끊고, 나는 의자를 빙글 돌려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사무실이 보였다. 간판만 봐서는 뭐하는지 알 수 없는 회사였다. 6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저 직원들도 다 나처럼 일하고 있겠지. 아니 나보다 더 하겠지. 그러면서 월급은 200 언저리에 머물고 있겠지. 그래도 찍소리 못하고 일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은 공부방을 하더라도 동업은 꿈도 꾸지 않았다. 게다가 창수와의 동업은 정말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는데. 그냥 술 마시며 수다 떤 것이 이런 결과가 될지는 몰랐다. 창수가 좋은 투자 같다며 웃을 때에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디어를 창수에게 팔아서 월급쟁이가 된 현실에 내가 너덜너덜 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 돈 들어가지 않고 테스트를 할 수도 있었고, 그래도 친구라도 꼬박꼬박 존댓말 하는 상사보다는 어떤 점에서 편하기도 했다. 어차피 핵심 아이디어는 훗날을 위해 아껴두면 된다. 어쨌든 창수 아버님 말씀대로 자존심은 상해도 나에게 기회는 맞았다. 감사해야 했다.
나는 창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장부는 엑셀로 잘 정리해서 보낼게. 그럼 오늘 회식할 테니 시간 되면 들려 이사님이 직접 직원들 격려하면 좋잖아. 츄리닝 입고 와도 돼 ㅋㅋ 직원들이 창수 이사장을 아주 개성 있다고 좋아하거든.]
https://www.youtube.com/watch?v=-X2Gi230R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