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대일밴드를 떼다
"잘 했어. 아주 좋다. 우리 진짜 대박이다. 이 새끼 씨발 존나 잘하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잘했어 새꺄.”
창수가 11월 장부를 보며 말했다. 나는 뿌듯하게 미소를 지었다.
“맘에 들어?”
“그럼 맘에 들지. 사실 이렇게 빨리 자리 잡을 줄은 몰랐거든. 이제 겨우 1년 반인데. 이 정도면 수익이 좋지. 이번 달엔 내가 지은이보다 돈 더 벌 거 같아. 집에 가서 이제 당당하게 돈다발 던져줘야지. 히히히.”
“야. 근데 좀 애 아빠에다 이사님인데 욕은 좀 그만 해. 응?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알았어. 알았어. 안 그래도 요즘 노력하고 있어. 암튼 이런 식이면 뭐.
잠깐! 그래도! 직원들한테는 이런 티 내지 말고, 부족하다고 강하게 말해야 하는 거 알지? 강사랑 상담 실장들한테는 겨우 목표 간당간당하게 도달한 거니까 더 팍팍 애들 데리고 오라고 해야 해.”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마. 다들 그런 말 안 해도 나태하게 안 해. 암튼 결재 났으니까. 이대로 입금하고 일들 진행한다.”
“그래그래 알아서 해. 야. 너도 이제 좀 짭짤해져서 좋겠다.”
“하하. 그러게 나도 이제야 김밥천국 안 가고, 순댓국 먹을 수 있겠다.”
“짜아식 겁나 검소한 척 하기는, 조만간 소고기 좀 먹자고. 참, 이런 식이면 우리 조만간 확장 개원해야 하는 거 아니냐?”
“확장 개원은 무슨...... 아직은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지. 암튼 올해 수확이 좋으니까. 내년에는 더 기대해도 될 것 같아. 이번 입시 설명회도 꽤 좋았으니까. 일단 재수생들 사이에서는 입소문 난 건 확실하고, 윤서가 수능도 괜찮게 보고, 논술도 좋고 해서 잘 붙을 것 같아. 무엇보다 윤서 얼굴 보고 등록도 많이 했고, 자습실 분위기 메이커도 잘 해줬고.”
“그래? 것 봐. 예쁜 애들이 뭘 해도 한다니까. 못 생긴 것들은 그렇게 못해. 암튼 수익이 많아지고 있으니까. 이런 식이면 확장할 거 생각해서 계획서 한 번 세워봐. 그리고 연말 결산 준비해서 아빠한테 올릴 것도 서류 하나 만들어 주고.”
“알았어. 그런데 초등부 교재 특허 관련해서 돈이 계속 들어가는데 괜찮을까?”
“돈은 걱정 마. 돈이 되니까 투자하는 건데 뭐. 특허랑 확장 부분 계속 보고해줘. 참 아빠가 의대생 만드는 전문 학원으로 플랜을 세워보라고 하더라구. 똘똘한 애들 모으라는 거 같은데. 사실 난 뭔 말인지 잘 모르겠거든. 아빠는 일단 의대 아님 다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의대 안 붙으면 의미 없다는 주의니까 그런 것 같은데. 암튼 아빠랑 나중에 한 번 만나봐. 그럼 나는 간다.”
창수는 서류를 건네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
“가야지. 여기서 내가 뭐하냐. 사실 여기 오기도 싫어. 재수생들 냄새나 나고 답답하고. 여기 올 때 옷도 갖춰 입어야 하고, 아 오기 싫어. 다음부터는 그냥 메일로 장부만 보내주고, 니가 우리 커피숍으로 와. 난 거기가 편해. 알바생도 아주 예쁘고 너도 눈요기도 좀 하고 하하하. 우리는 이제 일 이야기는 대강 하고. 나중에 스크린 골프나 한 번 치러 가자.”
“그래, 그러자. 커피숍도 잘 되나 봐.”
“거기야 뭐. 내 용돈 벌이나 하는 거니까. 사무실 삼아 만든 거라 부담 없지. 그래도 매일 두세 시간은 들여다봐야 애들이 빠릿빠릿하니까 그것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거지. 커피숍 들렸다가. 부동산 사장들 한 바퀴 돌면서 뭐 소스 있나 좀 보고, 우리 애기 시터 감시하러 집에도 한 번 들러야 하고, 내가 이래 봬도 바쁘다. 어휴 정신없어. 이건희처럼 그냥 누워있어도 알아서들 잘하면 좋겠는데, 다들 도둑놈 심보라 감시를 안 하면 놀고 앉았으니. 이래서 한국은 망하는 거라고.
흠흠. 뭐 암튼 나도 할 일이 많으니 가볼게. 이 서류들은 이메일로 보내고, 아빠한테도 정리해서 보내고, 담주에 전화해 고기 묵자. 알았지?”
“그래, 잘 가.”
나는 창수를 배웅하고 원장실로 왔다. 얼마 전에 강의실을 확장하면서 아예 창수 자리를 빼버렸다. 그리고 작게 원장실을 만들어서 내가 쓰고 있었다.
이제 나는 강의는 거의 하지 않는다. 관리와 교재 개발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고, 내가 프랜차이즈를 만들어가는 식으로 교재를 개발하고, 새로운 학습 방법을 만들어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거의 매일 학원에서 밤을 새우고 일에만 매진했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어떤 때는 정말 장사꾼이 된 것 같아 자괴감도 들었다. 목청 높여 강의하던, 학생들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질문지를 들고 오던 그때가 보람도 더 있었던 것 같아 그립기도 했다.
여유롭게 관리하는 매장을 돌며 돈을 버는 창수가 부러웠다. 나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일 안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올지 않을까 아주 잠깐 생각했지만 내게는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하면 칠순 즈음에 연금이랑 월세 조금 받으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딸린 식구만 없으면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메신저로 실장에게 장부를 결재해주었다. 내일은 모두 월급을 받을 것이다. 나도 월급을 받을 것이다. 이번 달에 나는 300만 원 정도 저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만큼 수입이 많아진 것이다. 지출은 거의 없고. 여전히 나는 차도 없고, 집도 단칸방이고 밥 3끼 외에는 딱히 돈을 쓰지 않는다. 모두 저금하고 있다. 민영이와 데이트를 하지 않자 돈을 쓸 데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돈을 모아도 즐겁지가 않았다. 그냥 돈에 절절매지 않으니 좀 좋구나 하는 정도랄까.
사실 요즘에는 민영이 생각이 종종 난다. 한동안은 민영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학원이 잘 되고, 인센티브를 받기 시작하자 민영이 생각이 종종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성공하면 민영이가 후회할 모습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해서 멋진 모습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날 사랑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 눈앞에서 다른 이와 입을 맞췄더라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아직 내겐 기회가 있었다. 시간이 있을 때 빨리 성공하고 싶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민영이의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유일하게 민영이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민영이는 몇 달에 사진 하나 올릴 정도로 페이스북을 자주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아는 끈이 페이스북이기에 가끔 프로필 사진 보려고 들어가는 것 뿐이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페이스북에 사진이 새로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민영이 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놈이랑은 사귈 민영이는 아니었다. 나를 차기 위해 이용한 놈이 분명했다. 그럼 다른 남자인가? 민영이 성격에 아무 사진이나 페이스북에 올릴 리가 없었다. 분명 의미가 있는 사진일 것이다. 누구지? 누구랑 사귀는 것일까? 뭐지?
하지만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누구한테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실장이었다. 여러 결재 서류와 처리할 일들을 가지고 왔다. 나는 여느 때와는 달리 대충 듣고 내보냈다. 아무것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였다. 결국 나는 창수에게 전화했다.
“야. 너 혹시 민영이 소식들은 거 있냐?”
“어? 별건 없는데.”
“아는 대로 말해봐.”
“왜 그래? 그 썅년에 대해서 알아서 뭐하게?”
“말해봐! 아는 대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 창수는 지은이에게 들은 바로는 선을 보러 다닌 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민영이가 안 그랬는데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는 둥 변한 것 같고, 최근에는 지은이랑도 연락을 잘 안 하는 눈치라고 했다.
창수의 대답을 들으면서 약간 정신이 돌아온 나는 소리쳐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걸었다. 날이 추워 걷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민영이는 날 사랑했다. 헤어지는 그 날까지도 난 그녀가 아직 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그녀를 사랑한다. 설령 그녀가 날 잠시 밀었더라도 난 기다리고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
다시 만나서 깨달았었다. 그녀도 나도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알면서, 본인의 마음을 알면서 왜 그녀는 자꾸 상처를 만들고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일까.
나는 계속 골목을 돌고 꺾어 해가 질 때까지 일단 걷고 또 걸었다. 진눈깨비가 내리가 시작했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어두운 하늘에 축축한 점들이 머리를 적시고 옷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학원으로 돌아왔다. 데스크 직원이 젖은 머리를 보더니 ‘어머, 눈 와요?’ 하고 소리치더니 창가로 갔다. 여직원들이 진눈깨비를 보며 첫눈이라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나는 원장실로 들어왔다.
일단은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할 일들을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종이를 하나 잡아 읽고 처리하고, 모니터로 확인할 것들을 확인했다. 그렇게 어떻게 시간이 몇 시간 흘렀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오윤서가 들어왔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어. 웬일이야. 수능 끝나고 며칠 쉬기로 했잖아.”
“할 일도 없고요. 면접이랑 논술 준비하려고요. 그래도 수능 대박 잘 나와서 저 좀 당당해져도 돼지요? 헤헤.”
윤서가 웃었다.
“그래. 잘 했어. 안 그래도 진짜 성적표 나오면 대대적으로 홍보할 거야. 입학하면 더 대박으로 만들 거고, 고생했다. 그래도 입학해야 등록금이랑 입학금 주는 거 알지? 끝까지 긴장 놓치지 마.”
“치, 원장님은 왜 오늘까지도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세요? 저 조금이라도 도움되고 있는 거 맞잖아요? 그럼 좀 따뜻하게 웃으면서 말해주시면 안 돼요?”
“무슨 말이야.”
“저... 이거...”
윤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더니 뭔가를 쑥 내밀었다. 빼빼로가 붙어있는 상자였다.
“이게 뭐야?”
“수능 전날이 빼빼로 데이여서 못 드렸어요. 혼날 거 뻔해서요. 수능보고 분위기 보고 드리는 거예요. 받아주세요.”
“그래, 고맙다.”
난 상자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여 다시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윤서는 미적거리며 나가지 않고 있었다.
“왜?”
“원장님, 저... 진심이에요. 그냥 드리는 거 아니에요.”
“응? 무슨 말이야.”
“저 원장님 좋아해요.”
나는 황당해서 미간을 찌푸렸다. 윤서는 얼굴이 타오르듯 붉어져서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저 원장님 진짜 좋아한단 말이에요. 저 이제 스물두 살이에요. 어린애 아니에요. 알아요. 원장님 일만 하고 연애 안 하는 거요. 직원 중에도 몇 명 고백하고 차이고 그런 것도 알아요. 그만큼 관심 없으시죠. 하지만 고백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저 원장님 좋아해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하고 강의하다 보면 노처녀 여자 강사부터 어린 여학생들까지 감정 구분 못하고 고백하는 일은 너무 흔했다.
“윤서야. 알았어. 대학 가서 그때 보자. 가봐.”
나는 가볍게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전 진심이에요. 전 이제 선생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단 말이에요. 대학도 못 가고 허드렛일만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방황했어요. 사실 잘못하다간 술집에 나갈 수도 있었다고요. 그런데 선생님이 꿈을 주고 방법을 주셨어요.
나한테 열심히 하는 방법,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원장님이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선생님 덕에 제가 해냈고요. 저 제가 이렇게 공부하고 성적 나올지 몰랐어요. 그런데 됐어요. 입학할 수 있을 거예요. 원장님 덕분에요.
원장님 말대로 하면 다 돼요. 앞으로도 전 원장님이 하라는 대로 살 거예요. 원장님을 믿으니까요.
그리고 그러다 보니 남자로 원장님이 보여요. 손도 잡고 싶고요. 데이트도 하고 싶어요. 좀 더 가까이 함께 하고 싶어요.
원장님 저 원장님하고 평생 함께 하고 싶어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밀쳐내지 마세요. 저 어린애 아니에요. 몇번 만나보시면 저 여자로 보이실 거예요. 기회를 주세요. 무슨 일이든지 원장님 손 잡고 간다면 두려움 없이 다 잘 견디고 원장님을 도울 수 있어요.”
“무슨 일이든지? 내가 시킨다면 할 수 있다고?”
“네.”
“날 믿는다고?”
“그럼요. 원장님은 똑똑하고, 사람 보고 다룰 줄 아시고, 따뜻하고, 진지하고, 성실하시고 그리고 인상도 좋으시고요. 전 원장님을 믿어요. 그래서 내 남은 인생도 맡기고 싶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윤서를 돌려보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그런데 아무튼 지금은 많이 당황스럽구나. 넌 어리고, 학생이고 말이야. 내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일단 돌아가. 입학이 확정되고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그 다음에 이야기 하자. 나도 지금은 바쁘니까.”
윤서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고개를 숙이고 종종종 도망가듯 나갔다.
나를 믿는다. 나와 함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내게 그런 말을 해주는 여자는 없었다.
민영이조차도.
생각났다. 민영이의 눈빛이.
민영이는 날 사랑했다. 그래서 내 불안한 미래에 뛰어들려고 했다. 내 손을 잡고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준비를 했었다. 그것이 그녀의 사랑이었다. 진흙탕 같은 삶을 감수하는 것 그녀가 각오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날 괜찮은 남자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주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꽤 괜찮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지쳤던 것이다. 만약 그녀가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놈인 것을 알았다면, 시간만 좀 더 준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는 조급해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날 애써 보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난 그녀를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단칸방에서 그녀 말대로 결혼을 했다면 나는 평생 그녀의 애완동물로 꼬리를 흔들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삐뚤어졌을 것이다. 아니 이미 삐뚤어지고 있었다.
아...... 내가 만약 그녀 생각대로 더 나를 비우고 그녀 말대로 모든 것을 했다면, 그랬다면 그녀는 날 떠나지 않았을까? 아니. 그래도 그녀는 날 떠났을 것이다. 어느 여자도 보호해주어야 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을테니까.
그렇구나. 나는 뭘 해도 그녀와는 안 되는 것이었구나. 내가 지금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나를 자신의 생각에 가두고 있으니까.
나는 내가 숨을 안 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크게 두어 번 심호흡을 했다.
민영이는 현명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라면 행복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의 그녀의 사진들을 다 삭제하고, 페이스북을 탈퇴했다. 카톡도 다 삭제했다.
이제야 진짜로 그녀를 보냈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 하나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순간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나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었다. 나는 맨 얼굴을 세수하듯 문질렀다. 여기까지다.
모니터에 네이트온 창이 깜빡이고 있었다. 경리 직원이 결재 서류들고 들어와도 돼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거울을 한 번 보고 들어오라도 대답했다.
직원이 서류를 놓고 나가면서 오늘 30분 뒤에 면접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술 한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뒤져도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사우나라도 갈까, 집에 가서 미드라도 다운받아 볼까, 혼자 어디 가서 한 잔 할까, 책상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나는 빈 학원에서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고,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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