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한 지 15년 정도 된 것 같다. 운 좋게 음악 공부를 하고 얼마 안 되어서 데뷔를 하고, 가수 이효리 씨 등 실력 있는 가수들과 작업도 많이 했고, 작곡가, 음악 피디로서는 드물게 본인의 앨범까지 내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활동하면서 항상 나는 내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팬들이 있음에 감사해왔다. 주변에서 이해를 못 할 정도로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조심했던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은 “솔직히 팬이 있다곤 하지만 당신은 사실 무명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팬이 있는 것은 확실하나 너무 미미해요. 자꾸 '팬들이 싫어할 거야.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는데, 자세는 좋으나, 팬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맞다. 활동 기간, 발매한 음악의 수 등과 비교하면,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음원 사이트 매출이나, 스트리밍 횟수 등을 모니터링하면 분명 꾸준히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의 수를 떠나서, 나는 그분들의 존재만으로도 힘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이그나이트의 팬을 오프라인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껏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열렬히 사랑해 주시는 분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물론 지인들의 제보를 통해,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 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본인의 입으로 '이그나이트의 팬입니다!'라고 말해주고,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그나이트의 노래를 들어주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은 먼 우주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 혹은 사이버에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 같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진짜를 만나다.
그런데 얼마 전, 진짜가 나타났다.
내 음악을 들어주고, 좋다고 해주는 분을 직접 만난 것이다.
바로 네이버에서 웹툰 [이별 만화 완성도]를 연재하고 있는 손경석 작가님이다.
손경석 작가님은 몇 달 전, 연재 중인 [이별 만화 완성도]의 '작가의 말' 란에 이그나이트의 노래를 추천해주셔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 추천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마냥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었는데, 몇 달 뒤에 또 한 번 추천해 주셨을 때는 얼떨떨할 정도로 기뻤다.
심지어 평소 그 웹툰의 팬이었던 성실장은 직접 작가님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후 성실장과 손경석 작가님이 몇 달 동안 계속 연락을 주고받더니, 드디어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작가님에게 1집, 2집 씨디에 싸인을 해서 선물을 드리려고 펜을 잡았는데, 평소에 싸인을 할 일이 도통 없었기에, 한 십 분 정도 싸인 연습을 하고 나서야 씨디에 실수 없이 싸인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정상 성실장과 작가님이 먼저 만나고, 나는 뒤에 합류해서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만나서 아무렇지 않게, 혼자 작업하는 이야기, 음악과 웹툰 이야기 등을 주고받았다. 작가님은 천호동에 살고 계신데, 그 동네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서른 무렵까지 살던 동네라 그런지 동네 후배 같기도 했다. (성실장 말에 따르면 천호동이라서 그런지 배우 조인성을 닮았다고 하는데, 정말 조인성같이 잘 생기셨다. 나도 천호동 출신인데... ㅠ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사실은 너무 떨렸다. 작가님이 실망하지는 않으실까? 무슨 말을 하지? 막 뭔가 해주고 싶은데 뭘 해주지? 등등의 생각을 하는 꼴이 마치 소개팅 자리에 나가는 것 같았다. 내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분께 잘 보이고 싶고,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싶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맺고 싶은 마음이 정말 영락없는 소개팅 같았다. (아!!! 그래서 성실장도 안 하던 파운데이션을 발랐나??)
작가님은 젊고, 잘 생기고, 순수하신 분이셨다. 만화를 봤을 때도 참 순수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순수하고, 솔직하신 분이신 것 같았다. 또 만화 외에도, 음악 등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으신 열정이 있는 분이셨다.
작가님은 오래전부터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내 음악 대부분을 알고 계셨다. 내가 어떤 일을 했었고,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이그나이트의 노래를 예의상이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셨다.
그런 존재를 실제로 만나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성실장도 내 프로필을 외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데뷔곡은 여전히 헷갈리고, 내가 뭐라고 하면, 버럭 화를 내면서 '당신이 도트리도 아닌데, 헷갈릴 수도 있지'라고 하는데......
손경석 작가님은 정말 ‘진짜’ 였던 것이다.
사이버 상으로만 존재하던,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플레이 리스트에 올려놓는다는 사람들이 진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작가님을 만나고 집에 와서 음원사이트에 들어갔다.
멜론에서 검색해보니, '사랑은 왜 언제나' 등 발표한 지 꽤 오래된 곡들을 포함해 지금도 한 달에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그나이트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5만 명이라...... 평소에는 '이 정도로는 밥벌이가 안돼네, 500만 명을 목표로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숫자였는데, 새삼 5만 '명'이 한 분, 한 분의 사람들인 것이 실감 났다.
가슴이 새삼 벅차올랐다.
사실, 여러 사정들로 인해 3집 정규 앨범의 발매를 미뤘다는 것 자체로 짐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나와 내 아내는 여러모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 힘듦을 이겨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이 힘듦이 음악 때문이라면, 음악을 놓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손경석 작가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내겐 오래던 발표한 노래도 질리지 않고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렇게 진짜로 존재하는, 이그나이트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음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
어쩌면, 내 음악을 정말 들어주는 존재를 현실로 만난 지금이, 진짜 프로 음악가로서 각성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이그나이트는 음악가로서는 프로 일지 몰라도, ' 대중'음악가로서는 아마추어에 가까웠던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는
그냥 음악가가 아닌, 대중 음악가로서 일어나야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그나이트의 팬 분들과 커피 한잔 놓고, 대화할 그날을 준비해야겠다.
감사하고, 아름다운 가을이다. ^^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