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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Sep 20. 2016

감독, 그 외로운 직업

작년 이맘때, 우리는 한창 뮤직비디오를 찍느라 힘들었었다.


뮤직비디오 14개가 말이 14개지 분량으로 치면, 단편영화도 아닌, 중편 영화 정도를 만들 수 있는 큰 프로젝트이다. 쉽게 말하면, 영화의 0도 모르는 초짜들이 돈도 없이 무대뽀로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모양새였으니, 여러 가지로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무모한 작업이었고, 다시는 내 인생에 이런 시행착오는 없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때, 나는 음반 관련 작업으로 바쁘기도 했고, 스토리 관련은 성실장 담당이라, 뮤직비디오 콘티 및 촬영 현장 에디팅은 성실장이 책임졌었다.


총 10번의 촬영 현장에서, 감독과 함께 촬영 전반에 걸쳐 에디팅을 하고 난 후, 성실장은 처음으로 나에게 ‘당신이 진짜 외롭고 힘들게 작업하는 것을 알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



눈 달린 사람은 다 감독할 수 있는 줄 알았어.


“촬영 현장에서 많이 외롭고, 힘들더라. 모두 한 부분의 책임자일 뿐, 전체적인 작품의 책임자가 아니기에 잘 보고 있지 않으면 엉뚱하게 일이 굴러가는 거야. 그렇다고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게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다들 책임자만 보면서 손가락 빨고 있고. 또 순간적인 판단을 잘못하면 모든 결과가 날아갈 수도 있고.


당신도 음악pd니까, 결국 감독 일을 하는 거잖아. 사실 그동안, 감독은 말 그대로 감독 짓만 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 눈으로 보고, 말하는 건 쉬우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어. 피디보다 작곡, 편곡 이런 게 더 중요한 줄 알았지.


그런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줏대를 가지고, 부분마다 컨트롤하고, 판단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다 아울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감독, 피디 일이 괜히 그런 자리가 있는 게 아니구나 싶더라.


생각보다 많은 실력을 요구하고, 스탭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작품의 처음 컨셉을 지킨다는 게 보통 고집으로는 되는 게 아닌 거 같아. 엄청 중요하고, 외롭고, 어렵고, 힘든 일을 당신이 하는 걸 알았어.”



감독을 잘 이해하는 스탭이 프로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나는 돈이 얼마가 들었던 뮤직 비디오 찍은 것이 정말 잘 한 일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야 마누라가 날 알아주었는데, 그것만큼 대단한 결과가 또 어디 있겠는가!!!


“흠...... 맞아. 가끔 감독은 그냥 투덜대기만 하고, 꼬투리만 잡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아마추어들이 하는 말이고, 진짜 프로는 현장에서 감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거든.

그리고 실제로, 감독은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되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의 관계, 그 분야에 대한 실력, 감각, 여러 상황들에 따른 대처능력, 임기응변 등 여러 분야의 노하우가 많이 필요하지.


그 무엇보다도, 남들 눈에는 독불장군처럼 보여도 작품을 위한 고집이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에서 감독들이 예민하고, 가끔 말도 거칠게 하는 등, 다양하고 독특한 개성을 가지게 되는 거야.


이제 내가 가끔 뾰족하고 예민하게 굴고 하는 거 잘 이해해 줄 수 있지? 에헴.”


“...... 그렇지, 그럼 당신도 내가 얼마나 힘든 일 하고 왔는지 잘 알겠지? 나도 지금 에디터로서 감독일 하고 오느라 힘들었거든. 그런 점에서 저기 쌓인 설거지 좀 해줘요. 감독일 하고 오느라 힘들다. 난 목욕 좀 할래.”


성실장은 끄응~하고 일어서며, 샤워한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쩝,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엌으로 갔다.


어휴, 어쩔 수 있나. 우리 집의 감독은 성실장인 걸. 감독님 지휘대로 지금은 설거지할 때인가 보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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