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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Feb 05. 2016

예술가들도 듣기 괴로운 그 이름, 설

어김없이 설날이 다가왔다. 취준생들, 수험생들, 혼기가 꽉 찬 미혼분들 모두 스트레스를 받는 명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명절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예술가’다.


지금이야. 나름 노하우가 생겨서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막 음악을 시작하던 어릴 때에 ‘너 요즘 뭐하냐?’라는 질문이 정말 듣기 괴로웠다.


“요즘 뭐해?”

“음악 해요.”

“음악? 너 노래 잘해?”

“아니요. 작곡해요.”

“작곡? 한 달에 얼마 버는데?”


그러면 나는 작곡가의 수입구조에 대해 1분짜리 논평을 해야 하는지, 최근 사례를 들어 정식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의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들 대충  먹고살아요.’라고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어대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그러려니 하는데 아직 데뷔를 앞둔 예술가들이라면 오지라퍼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면 엄청 부담스러울 것이다.


아, 또 한 사람 있다. 괴로워하는 사람 말이다. 바로 내 아내. 예술가의 아내이다.


내 아내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내 직업을 그냥 ‘강사 혹은 자영업자’라고 말한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남편 직업이 부끄러운가 싶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내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사람들에게 남편이 음악 한다.  예술가다.라고 말을 하면, 그때부터 불편한 일이 종종 있어. 괜히 안쓰럽게 보면서 ‘어서 재취업해야지’ 라거나, ‘‘우리 아이 음악 좀 봐달라고 부탁해야겠네’, ‘그럼, 혹시 가수 누구누구 알아?’ 이런  말하면서 불쌍하게 보거나, 귀찮게 하거나, 암튼 특이한 별종으로 본다고.”


아내의 투덜거림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은 나도 때론 별 상관없다 싶은 자리에서는 귀찮은 시선이나, 질문이나, 과한 아는 척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나의 직업을 대충 ‘강사’라고 말해버린 적이 있으니까.


물론 예술가라는 직업, 예술이란 장르적 특성상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평생 겪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시선을 바탕으로 예술가를 대하는 극단적인 2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먼저 극단적인 호감형이다. 이 쪽은 예술에 대한 선망이 크고, 나름 아는 지식이 많은 부류이다. 그러다 보니 아는 척을 하면서 질문을 많이 하는데, 나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이라도 ‘어버버’하면서 대답하면, 왠지 내 실력까지 평가절하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상대가 어르신이면, 일장 연설 및 뜻하지 않은 강의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한 가지 부류는 극단적인 비관형이다. 일단 본인이 모르는 모든 예술가는 그냥 예술가 지망생일 뿐이므로,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이다. 그냥 무시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자꾸 뭘 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동정을 베풀 경우 참 거절하기도 그렇고 왠지 민망하다.


사실, 나도 예술가라는 직업,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바탕이 된 질문은 얼마든지 좋다. 거꾸로 나 역시 내가 잘 모르는 의사나 판사, 파일럿 등의 직업을 가진 분을 만나면 궁금한 것이 많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궁금한 것을 넘어서, 몇 가지 질문이나 나의 겉모습만 보고, 특히 내 음악을 진지하게 듣지도 않고는 ‘특이하네, 틀렸네, 안됐네,  힘들겠네’라고 결정짓고, 그 편견 속에 나를 가두는 것은 사실 매우 불편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오지라퍼 친척들은 ‘그럼 무슨 대화를 하냐? 다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다.’ 라며 꿋꿋하게 질문을 하고, 우리 예술가와 그들의 부인과 부모님까지 걱정해주실 것이다.


명절을 보내는 나름의 노하우를 말하고 싶다. 질문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재빨리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촌 형은 요즘 잘 지내시죠?’ 하고 얼른 토스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질문을 한 이유는 진짜 내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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