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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Feb 02. 2016

쉼표 ,

지난 일요일 가족들과 바다에 다녀왔다.


이렇게 말하면 멀리 겨울 여행을  다녀온 듯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바다에 가는 길에 부모님께 전화드리니 숙소는 정하고 가는 거냐고 물어보시기도 했으니까.


나는 인천에 살고 있다. 집 앞에 바다가 펼쳐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인천 부평에서 바다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서울의 경우 합정역에서 송파구의 올림픽 공원에 가는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을왕리에 도착하니 마침 일몰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어린 딸 둘을 옷가지로 똘똘 싸매고 차에서 내렸다.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세게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어두워지기 전의 마지막 햇살이 더 밝게 빛났고, 겨울 바다의 파도 소리는 귀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모래의 서걱거림과 자갈돌의 울퉁불퉁함을 느끼며 서서는 기지개를 쭉 켰다. 모처럼 뻥 뚫린 곳에 오니  팔다리를 쭉쭉 늘리고 싶었다.


큰 딸은 춥지도 않은지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둘째는 낯선 겨울바다에 울먹이며 엄마 품에 매달렸다. 둘째를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큰 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나름 실컷, 딸아이와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칼바람이 더 거세지고 있었다. 더 달리고 싶어 하는 아이를 설득해서 차에 돌아왔다.


히터를 켜고, 시계를 보니, 어이쿠, 고작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정말 짧은 나들이었다.

짧은 나들이었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시간 날 때마다 더 자주 데리고 다녀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사 먹고, 집에 와서 애들을 씻기고는 잠을 자라고 엄마와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는 혼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며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잡일들을 하며 머리를 식혔다.


한 시간 후, 아내가 부스스하게 방에서 나와 내 옆에 앉았다. 조용히 나를 보더니 한 마디 했다.


“당신 혼자 여행이라도 가면서 제대로 쉬면 좋을 텐데. 살다 보면 쉼표도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달리는 것만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됐어, 오늘 정도 휴식이 딱 좋아. 모처럼 애들이랑도 같이 놀고 아주 좋아요. 내일 좀 늦잠 자는 것만 허락해주세요.”


이번 주에 3집의 8번째 음원이 발매되었다. 그래서 나름 마감 후에 머리 식히러 가족들과 가까운 반나절 나들이를 다녀온 것이다.  아내는 내가 더 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나 보다.

나도 내심 더 쉬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아내의 고마운 말에 괜히 더욱 자상한 아빠의 모습으로 대답했다.


매달 노래 한곡씩을 발표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곡은 다 만들어 놨지만, 곡을 다 썼다고 끝이 아니다. 매달 후반 작업에 매달려야 하고, 관련된 뮤직비디오 및 앨범자켓 그리고 유통사와 발매 일정을 조율하고, 또 기타 내 개인 작업까지 하려면 시간이 그렇게 모자랄 수가 없다.


마음 같아서는 매달 발매 후에, 후련한 마음으로 따뜻한 바닷가로 여행도 가고 싶지만... 돈도, 시간도 없는 지금으로선 그저 꿈일 뿐이다.


올해 7월경, 3집의 모든 프로젝트를 마감하고, 가족 모두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면 모를까.

하긴, 만약 정말 이 프로젝트가 잘 된다면 그때는 정말 더더욱 바빠져서 여행을 못 가겠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말이다.


속으로 빙긋 웃으면서 맥주를 들이켰다. 한 모금 마시고 보니 어느새 맥주캔이 비어있었다.


나는 빈 캔의 마지막 몇 방울을 입에 탁탁 털며 일어났다.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한 캔만 더 마시고 자야지.


“흠흠.”


빨래를 개던 부인이 헛기침을 했다. 나는 아차! 싶었다. 말로는 푹 쉬라고 했지만, 혼자 빨래를 개고, 월요일인 내일을 준비하는 아내의 속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2개를 꺼냈다. 그리고 캔 입구를 싹싹 닦은 후 따서 하나를 아내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도 빨래를 같이 개기 시작했다.


“안 해도 되는데. 쉬어요. 호호.”


아내가 웃으니 안심이 되었다. 내일은 정말 늦잠을 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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