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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Dec 21. 2015

또 하나의 음악이 세상에 나왔다

2집 앨범을 발표한 날, 3집의 계획을 세우다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가장에게 담배를 필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다. 나는 잠옷 위에 외투를 입고 현관 밖을  나와한 층 위인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꼭대기층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뱉었다. 

담배를  들고나가는 나를 보며 잔소리를 삼키던 아내 얼굴이 스쳤다.    


핸드폰을 켰다. 2012년 11월 9일 밤 11시.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이그나이트’를 검색했다. 

오늘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린, 대출까지 받아 완성한 2집의 정식 발매일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세상은 조용했고, 발매까지 된 음원 속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거슬려서 짜증이 났다.    

한숨처럼 담배를 또 한 모금 뱉었다.    



여보, 이사 가요.


조금 전,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사를 하자고 했다.    


“2집 발매일만 기다렸어. 이사하자는  말하려고, 이제 다 끝났으니까. 친정 쪽으로 이사하자. 

이사해서 대출도 정리하고 안정적으로 살아보자. 이미 친정에도 다 양해 구해놨어. 

애도 봐주신다고 했으니까. 집만 내놓으면 돼.”    


아내의 말이 동굴 속의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아프게 맴돌았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이 곳에서 자랐다. 부자로 산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서울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누구나 고향을 떠나는 것이 두렵고 어려운 것처럼, 나는 서울을 떠난 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또 이미 신혼 초에 전원주택에 대한 환상으로 잠깐 경기도 양평에서 살긴 했지만 서울이 그리워서 최대한 빨리 다시 서울로 나온 전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원치 않은 지방 생활은 내 스스로 ‘잘 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담배를 물며 괜히 발로 벽을 툭툭 쳤다.     

카톡이 왔다. 아내였다.    


[여보, 지윤 아빠. 당신 속상한 거 알아요. 자존심 상해하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잘 생각하세요. 

이 상태로는 3집 못 만들어요. 

설령 2집이 잘 돼서 대박이 난다고 해도, 정산될 때까지 3~6개월은 걸립니다. 

그동안 대출이자랑, 관리비 같은 생활비는 어찌할 거예요?

친정으로 이사 가서 애 맡기고 내가 돈 벌게요. 그러면 당장 지출도 줄고, 수입은 늘어나요. 

그래야 당신 3집을 할 수 있어요. 

남들 시선? 그건 부인이 일하고 싶어서 안달 나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다들 이러고 살아요. 

3집 하고 싶지요? 해야 하지요? 그러면 이사 가요.]    


3집이라.    


2집을 발표하고,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그러다 보면 혹시 세상이 날 봐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2집 14곡 중 몇 곡이나 팬들이 좋아해줄까. 어떤 곡이 세상의 간택을 받아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을 밝혀줄까 상상했었다. 마지막인 것처럼... 그만큼 열심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자했었다.    


그런데 3집을 잊고 있었다.    


하긴... 어차피 나는 3집도 해야 하고, 최소한 60살까지는 계속 음악을 발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후 저작권료로 내 손주들 책값은 대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응!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될 때까지 덤벼야지! 응! 이제 2집 발표했으면 쉬지 말고 다음 거 준비해야지! 어디 감상에 젖어서 시간 낭비하려고 말이야!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담뱃불을 껐다. 3집에 한 푼이라도 보태려면 담뱃값이라도 아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꽁초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여니 따뜻한 훈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내가 식탁에 커피를 내려놓고 나를 보고 웃었다.    


“여보 우리 갑시다, 이사.”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 성효영 - 이그나이트의 부인. 이그나이트 뮤직의 에디터. 작가. 실장 등 여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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