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그나이트 Dec 30. 2015

인천 작업실


둠칫빡칫 두둠칫빡칫

며칠 동안 작업하던 곡의 리듬 작업이 막 끝났다. 뿌듯함과 개운함으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시계를 봤다. 지인이 오기로 약속한 시간이 20분 남아있었다.


흐뭇한 기운에 벌떡 일어나 커피를 한잔 끓여 마셨다. 눈을 감고 잠깐 쉬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약속 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아있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적당히 어둑어둑했다. 새로 마련한 인천의 작업실은 매우 춥고, 조용했다. 갑자기 멍청하게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데, 잠시의 시간도 놓칠 수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컴퓨터 앞에 바싹  다가앉았다. 지인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작업 중인 다른 곡의 사운드 체크를 하기 위해 mp3 파일로 바운스를 한다. 아무래도 음악가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스피커보단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피커로 음악 감상을 하시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언젠가부터 곡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블루투스 스피커로 모니터링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곡은 다른 곡들에 비해 유난히 많은 수의 트랙을 써서 그런지 바운스 하는 속도가 더디다.

쩝. 잘 나가다가 이렇게 컴퓨터의 성능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살짝 조바심과 짜증이 난다. 그리고 괜찮은 스펙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장비들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컴퓨터가 느릿느릿 바운스를 하는 동안 시계를 봤다. 

지인이 올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원래 약간씩 늦는 친구지만 너무 심하다 싶었다. 어쩐지 핸드폰을 보니 카톡이 와 있었다.


[형! 제가 일 때문에 출발이 늦었어요. 그런데 네비 보니까 너무 막혀서요.. ㅠㅠ  죄송해요. 오늘은 못 갈 거 같아요. 인천 너무 멀어요. 엉엉]


나름 귀엽게 이모티콘을 섞어서 보낸 메시지에 짜증이 밀려왔다.



올 사람은 오게 돼 있다.


인천으로 이사 오면서 가로수길 근처에 있던 작업실도 집 옆으로 옮겼다. 월세도 절약해야 했지만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었기 떄문이다.

그런데 서울, 논현동의 그 좁은 작업실에 있을 때는 불쑥불쑥 찾아오던 지인들이, 인천으로 오자마자 거짓말처럼 발길을 뚝 끊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야 멀다고 하는 말들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자가용으로 러시아워 피해서 오는 사람들의 경우, 인천으로 옮겼다고 하면,  “인천???!!!”이라고 하면서 무슨 산간오지로 이사 간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만 아니면 20-30분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하긴 뭐... 나도 서울 살 때, 인천, 부천, 부평 다 같은 동네인 줄 알고, 멀다고 했었지만 말이다.


나는 지인에게 답문을 보냈다.

[그래, 좀 멀지. 작업 관련해서 상의할 것 있으니까. 조만간 보자. 내가 다음 주 강의 끝나고 니 작업실 쪽으로 갈게]


어차피 올 사람은 오게 돼 있다.  이사했다고 못 볼 사람이라면 거기까지겠지.

내가 잘못돼서 온 것도 아니지만, 설령 잘 안 풀려서 이사 왔다고 해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와주는 이가 진짜 내 사람이겠지 싶다.


상처받지 말자. 이 참에 작업할 보너스 타임이 더 늘어나서 좋지 아니한가.

이런 식이라면 계획보다 빨리 3집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 더 좋은 것 아닌가.


나는 빙긋 웃으면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오늘 작업 때문에 또 늦게 갈 것 같아. 이번 곡 맘에 들게 나와서 조금만 더 진행시키고 갈게. 먼저 자]

매거진의 이전글 또 하나의 음악이 세상에 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