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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Jan 05. 2016

이그나이트 3집, 이야기의 시작


“홍홍홍. 옛날 연애하던 거 생각난다.”


“뭐? 무슨 학생이 연애야. 너무 노는 애는 안돼. 공부도 잘하고 똘똘해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 애들도 볼 건데 교복 입은 학생이 연애하는 건 별로야.”


“어이구, 조선시대 살아요? 내 경험상 말이지. 어느 정도 예쁘장하면 고등학생 때 뭐 하나 건수는 다 있다고, 남자들이 가만 안 둬. 도서관에 가도 쪽지 한두 번은 받는 거고, 독서실 앞에서도 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게 벌써 20년 전이라고, 요즘 애들은 더 발전했겠지. 고2 여름에는 연애를 시작하는 걸로 해야 해. 소개팅이나, 학원에서 만나서 같이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물론 너무 진한 연애는 안되지. 우리 주인공은 순수하니까.

홍홍홍홍. 나 고등학생 때  고백받았던 거 기억난다. 고 1 때 겨울방학이었는데... “


운전을 하던 나는 살짝 눈을 돌려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2013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휴가를 낸 아내와 함께 작업실 벽에 붙일 흡음용 스펀지를 사러 교외의 공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둘째를 임신해서 볼록 나온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소설 구상을  이야기하는 아내의  옆얼굴에 맑고 깨끗한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남편의 음악에 아내가 글을 입히다.



3집은 총 14곡을 담을 예정이었다. 그 14곡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져 있었다. 한 곡이 아닌 여러 곡을 앨범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할 때,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주제일 것이다. 나는 이번 앨범의 주제를 “우리가 해봤던, 누구나 해봤을 법한 사랑”으로 정했다. 그리고 사랑과 관련된 설레임, 만남, 기다림, 이별, 아픔, 성숙 등 다양한 감정들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곡을 작업하기 전에 먼저 마인드맵을 사용해 나름의 연애를 바탕으로 한 커플의 스토리보드를 작성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의 인연을 작성하고, 그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에 맞는 순간의 멜로디 라인을 창작했다. 


그렇게 14곡의 멜로디와 가이드 녹음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됐을 때, 아내가 합류해서 상세 스토리 즉, 소설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소설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단지, 가사를 쓰기 위해 여자인 아내의 조언이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내는 ‘우리가 만들고 나눈 이 이야기들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 우리 이걸로 소설 하나  쓰자.’라고 했고 본격적으로 소설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음악에 소설까지 같이 완성하기로 한 후, 오늘이 드라이브 겸 첫 회의 날이었다. 아내는 무척이나 들뜨고 신나는 기분에 약간 주책이 되어 자기의 연애담을 줄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고, 나 역시 행복했다.



재밌으면 O.K



“여보, 누가 당신 연애 이야기 듣재? 소설에 집중하시라고요.”

괜히 심통이 난 척, 무뚝뚝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바꿨다.


아내가 눈동자만 굴려서 나를 쳐다보며 ‘아차’ 하는 표정이 안 보여도 느껴졌다.


“아니,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보고 듣고 한 경험에 비춰보면 말이야. 뭐! 주제가 어쨌든 흔한 사랑이잖아. 현실성이 있어야지! 내 이야기 아니라고!”


뻔뻔한 척, 목소리를 높이는 아내가 더 귀여웠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좋아? 일하고, 애보고, 임신까지 해서 힘들 텐데. 정말 소설 쓸 수 있겠어?”


“그럼, 어차피 곡 만들 때부터 다 들었던 이야기들이고, 머릿속에 대강 다 그림은 그려져 있으니까. 당신과 합의 보는 게 제일 어려울 거야.”


아내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보았다.


“여보, 고마워요. 나 다시 글 쓰게 해줘서. 우리 이번 앨범은 정말 즐겁게 만들자. 나중에 우리 애들도 보면서 좋아하게 말이야.”


“그래, 나도 고마워. 그런데 주인공은 무조건 대학생 때부터 연애할 거야. 그건 못 바꿔.”


“쳇! 안 넘어가네. 알았어요. 그럼 신입생 환영회 때 술 마시면서 꼭 사건이 하나씩 나잖아...”


아내는 다시 재잘대기 시작했다. 


나도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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