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 그만하자

Chapter 4. 사랑은 순식간에 이별은 천천히 (3)

by 이그나이트

민영은 택시를 타고 현욱이 타기 전에 문을 닫았다.


현욱이 어버버 하는 사이 택시가 출발했다.






현욱은 얼음이 되어 택시가 떠난 자리에 멈춰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핸드폰이 부르르 떠는 힘에 정신을 차렸다. 민영이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나랑 절대 안 헤어진다는 너의 말에 사랑에 빠졌고, 입대 전날 나와 오래된 부부처럼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말에, 오빠가 결혼까지 생각하는 줄 알고 감동받았어. 그래서 나는 정말 오빠랑 결혼까지 할 마음으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고. 그런데.

오빠는 툭하면 면회 오라고 칭얼대고, 휴가 나와서 놀자고 철없이 굴기만 하고,


휴....


나 때문이 아니라, ‘우리’때문에 공부하는 거지만,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할 정도로 철없는 오빠를 이해해주려고 나 노력했어.


왜냐면, 그래도 오빠는 누구보다 내 합격을 바라고, 내 공부를 응원해주는 줄 알았어.

앞으로의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아니었네......


정말 오빠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오빠 제대 기다리면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했는지 모르는구나.


어떻게 오빠가 나한테, 제대할 때, 아무것도 안 해줬으니까, 시험 끝난 것도 신경 안 쓰는 거라고 말하고, 어떻게 모텔 안 간다고 짜증이나 내고 그럴 수 있어?


예전에 입대 전날에도 모텔 안 가던 그런 오빠는 이제 없는 거야?


지난 4년, 그냥 4년도 아니고, 군대 포함한 4년이야.


오빠는 내가 옆에 있는 게 당연했나 봐.

내가 오빠 옆에 있기 위해, 안 흔들리려고 얼마나 노력한지도 모르고 말이야.


이젠 나 노력하고 싶지 않아... 다신 연락하지 마.]


현욱은 길고 긴 카톡 메시지 중에 ‘다신 연락하지 마’란 글자만 눈에 확 들어왔다. 자세한 내용을 읽기도 전에 무작정 두려움만 쏟아졌다.


현욱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혼잣말을 하며 민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신호가 울리고, 계속 전화를 해도 민영이는 받지 않았다.

현욱이는 카톡으로 답을 보냈다.


[민영아. 내가 잘못했어, 전화 좀 받아. 내가 다 사과할게, 용서해줘.]


메시지 앞에 숫자 1이 사라졌다. 현욱이는 얼른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메시지를 확인했어도, 민영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현욱은 또 카톡을 보냈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돈이 없어서 그랬어. 복학하고 과외가 예전처럼 많이 들어오지 않아서 좀 힘들었어. 내가 돈이 없어서 미안해. 나이만 많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그래. 미안해]


잠시 후, 메시지 앞에 숫자 1이 사라졌다.


현욱이는 또 전화를 했지만 민영이는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현욱이는 또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또 전화를 하고, 또 메시지를 보내고, 그렇게 한 참을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민영이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자주 투닥거렸지만 그 어떤 커플보다 흔들림 없이 사랑을 확신한다고 생각했었다. 속상하고 섭섭할 때도 서로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고작해야 혼자서 이제는 헤어지면 힘들겠다 정도 상상했던 것이 다였다.


그런데 이렇게 이별이 다가오다니, 정말 주저없이 헤어져야겠다는 확신이 이렇게 한 순간에 다가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현욱이에게서 계속 카톡과 전화가 왔다. 하지만 민영이는 모두 씹었다. 현욱의 징징거림에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현욱의 숨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짜증 났다. 일단 도망가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민영은 모처럼 늦잠을 잤다. 잠에서 깨었을 때, 집안은 고요했다. 민영은 집안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소파에 몸을 푹 던졌다. 빈 집이 고마웠다.


엄마가 있었다면 시험에 붙을 거 같냐. 아니냐. 피부가 상했으니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 쇼핑가자. 등등 귀찮게 했을 것이 뻔했다. 민영이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쭉 펴고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핸드폰을 꺼냈다.


현욱의 전화와 카톡이 엄청 와 있었다.


카톡 미리보기에 [돈이 없어 미안해......]만 주구장창 보였다. 민영은 가볍게 한숨을 뱉고는, 카톡 방에서 나가고, 현욱을 차단했다. 그리고 밥을 차려 먹었다.


그릇은 대충 싱크대에 넣어두고 민영은 소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케이블 티비에서 몇 년 전의 무한도전을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민영은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발치의 담요를 덮었다. 탤레비젼 볼륨을 높이고, 쿠션을 베고 누웠다. 무한도전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재수, 삼수 끝에 선택하는 회계 전문 학원. 만선 학원에서 회계사의 꿈을 이루세요]


민영이는 ‘재수없어’라고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머리맡의 쿠션 아래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무한도전을 보며 웃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문자 메시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아서 쉽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민영이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광고를 들여다봤다. 회계사 준비생 인터넷 카페에 가서 경쟁자들의 근황도 들러보았다. 대부분 시험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재수 혹은 2차 준비에 들어간 것 같았다.


민엉이는 핸드폰을 다시 쿠션 사이에 쑤셔 넣으며 드러누웠다. 그리고 담요를 덮으며 생각했다.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 다시 학원가자.’


낮은 천장에 붙은 사진 속 민영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현욱이 입대하기 직전 훈련소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현욱은 그 사진을 천장에 붙여 놓고 누워서 바라보곤 했다. 반지하 단칸방에는 사진 한 장 걸 자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욱은 그 사진 아래에 누워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영이는 며칠째 현욱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메시지 씹는 것은 물론이고, 집 앞에서 기다려도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아 마주칠 수도 없었다, 지은이의 핸드폰을 빌려 전화해도 현욱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민영이는 통화를 그냥 끊었다.


현욱은 무엇부터 잘못된 것인지 곱씹고 또 곱씹었다. 몇 번이고 이별 통보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모두 다 돈 때문인 것 같았다.

돈만 있었으면 민영이랑 아무 때나 여행도 가고, 어디 갈지, 뭐할지 고민하지 않고, 영화, 커피, 밥, 술을 돌려가며 편안하게 데이트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구차하게 모텔 가자고 안 해도 됐을 것이다.


돈만 있었으면, 민영이가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을 거고, 민영이가 공무원 시험을 보라는 등 잔소리도 안 했을 것이다. 아니 민영이가 해주는 말들을 걱정으로 받아들이지 잔소리로 꼬아서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아니다. 돈만 있었으면 번듯한 자취방을 마련해서 맨날 집에서만 편하게 만나서 소꿉놀이하듯 즐겁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현욱이는 4년 동안 민영이를 한 번도 자취방에 데려오지 않았다. 처음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민영이가 지나가는 말로 ‘반지하가 뭐야? 어떻게 생겼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후, 번듯한 방을 구하기 전에는 민영이를 데려오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내게 이제 민영이가 없다니, 돈만 있었다면... 어디로 어떻게 해야 취업이 되고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지금 이 상황이 민영이 때문인지, 돈 때문인지, 암울한 미래 때문인지 현욱이도 헷갈리며 머리가 아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창수에게 전화가 왔다.


“뭐하냐?”


“그냥 집에 있지.”


“병신, 술 사줄까?”


“됐다.”


“됐기는 나와 술 사줄게. 아님 내가 간다.”


“오지 마.”


“그럼 나와. 나 너네 집 주소도 알아.”


“씨발, 오지 말라고,”


“나 사실 너네 집 앞 골목인데. 빨리 나오는 게 좋을 걸”


“......젠장. 알았어.”


현욱은 창수가 와서 부끄러운 단칸방을 들킬까 봐 서둘러 일어났다. 며칠째 안 감아 떡지고 뻗친 머리에 윗도리와 아랫도리의 색이 짝짝이로 다른 츄리닝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집 앞에 창수 차가 있고, 창수가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에이, 씨발 이 개새끼야 여기 오지 말라니까. 여기서 뭐해?”


“됐어, 병신 새끼야. 이거 받아.”


창수가 대뜸 현욱에게 차키를 건네주었다.


“이거 뭐?”


“하루 빌려줄 테니까. 가서 민영이랑 기분 전환하고 와.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지고 심각한 것 같아서 특별히 빌려주는 거야. 기름도 다 채웠어. 그리고 이거 카드야. 카드 값은 나중에 알아서 줘. 제부도나, 춘천이면 다녀올 만할 거야. 아님 그냥 밤에 남산에 가서 차에만 있어도 되고 거기 길가에 주차해놓고 하는 재미가 또 죽이거든. 낄낄낄. 아무튼 민영이 잘 달래줘.”


“어... 고맙다.”


“지은이한테 고맙다고 해. 지은이 아이디어니까. 암튼 우리 넷 워낙 각별해서 나도 남 같지 않아서 이러는 거야. 꼭 성공하고.”


“어..... 고맙다고 전해줘.”


창수는 현욱이 어깨를 툭툭 치고,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현욱은 서둘러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차를 몰아 민영이한테 갔다. 장롱면허 실력이라 긴장한 탓에 온 몸에 땀이 흘렀다.

현욱은 겨우겨우 민영이네 아파트에 도착했다. 떨리는 손으로 민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웬일인지 민영이가 금방 전화를 받았다.


“지은이한테 들었어. 기다려.”


전화를 받자마자 민영이가 싸늘하게 말했다. 잠시 후, 민영이가 나왔다. 현욱이는 차에서 얼른 내려 차문을 열어주었다.


“잘 나왔어 민영아. 너도 좋은 차 타고 드라이브하면 기분 좋아질 거야.”


현욱이 자리에 앉아 시동을 걸며 말했다.


“시동 걸지 마.”


“응? 왜?”


“누가 너랑 있는 거 볼까 봐 차에 탄 것뿐이야. 너랑 어디 가고 싶지 않아. 이 말하려고 나온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휴... 이젠 정말 끝내자. 우리 헤어지자 정말로.”


“민영아.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사실 내가 군대 제대하고 정말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어. 그러다 아무래도 창수랑 비교가 되니까 심경이 꼬여서 하루 종일 너 힘들게 했어. 또 돈이 없어서 너 시험 끝났는데 이벤트도 못해줘서 미안해. 마음은 안 그래. 알잖아. 이 정도 사과하는데 이제 좀 받아줘.”


민영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 그래도 진짜 헤어지자. 그 날 하루 때문만이 아니야. 그냥 내가 힘들어서 그래. 생각해봐 군대는 끝나는 날짜가 있기라도 하지. 시험은 그게 아니잖아. 나 다시 학원 등록했어. 오빠는 바쁜 3학년이고, 난 수험생이야. 오빠도 취업, 학점, 알바로 바빠. 난 시험 스트레스로 엄청 예민 할 거고, 더더욱 오빠한테 내줄 시간 없어. 우린 또 싸울 거야, 문제는 언제 이 싸움이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아무튼 지금은 시기상으로 우리는 둘 다 연애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차분하고 냉정한 민영이의 말에 현욱은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너 나 때문에 공부하는 거라면서.”


현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무엇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일단 시험에 합격하는 게 중요해졌어.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떨어지면, 포기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러니까 나 시험공부에 매진하게 도와줘.

그래!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오빠는 취업 준비하고, 각자 열심히 살다가 다 정리되면 그때 만나자. 그럼 되잖아."


“싫어. 난 이대로 너 못 보내. 그리고 어차피 니 말대로 나도 더 열심히 취업준비 하기 시작하면 더 바빠질 거야. 그럼 너 귀찮게 안 하게 될 거고, 그러니까 어차피 각자 열심히 살 거야. 헤어지지 않아도 우린 함께 성공할 수 있어. 내가 잘 할게. 나는 너 없으면 죽어. 내가 어떻게 살겠어. 민영아, 내가 이렇게 빌고 잘하겠다는데 용서해줘.

너 나 사랑하잖아. 우리 사랑하잖아. 안 그래?"


현욱이가 살짝 울먹이며 민영이의 손을 잡았다.


민영이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따스한 체온, 누구의 손에서 나온 땀인지 모를 축축함, 지난 시간 수없이 잡아온 손이었다. 내 두 손을 마주 잡는 것보다 더 익숙한 접촉이었다.


현욱이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전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 현욱의 진심을 민영이도 잘 알고 있었다.


현욱에게 손을 잡힌 채, 민영은 창 밖을 보았다.


초여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민영은 잡히지 않은 팔을 창문 위에 올리며 머리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답답했다. 민영이가 부드럽게 현욱의 손을 놓았다.


“민영아. 나는 너를 사랑해. 정말이야. 내가 무조건 미안해. 내가 잘 할게.”


현욱이가 민영이 눈치를 보며 주눅 든 소리로 말했다.


민영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일단 어디든지 가자. 동네 사람들 보기 전에 차 빼.”


현욱이 웃으며 불안해하며 말했다.


“용서해 주는 거야?”


민영은 여전히 눈을 피해 밖을 보며 대답했다.


“일단 차 빼고 말하자.”


현욱이가 코를 쑥 들이마시더니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설정을 눌렀다.


“제부도 갈까? 춘천 갈까?”


주눅 든 현욱이의 목소리에 민영이가 건조하게 말했다.


“내일 학원 가야 하니까 멀리 갈 생각하지 말고, 동네 사람들만 안 보이게 일단 출발하라고.”


현욱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했다.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고,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현욱이 민영이를 바라보며 물어봤다.


“민영아 사랑해. 너도 나 사랑하지?”


“알았어. 출발이나 해.”


민영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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