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그만하자
늦은 밤, 현관문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아파트 복도에 울렸다. 삐걱 문이 열렸다. 컴컴한 거실에 텔레비전 화면이 깜빡이고 있었다. 엄마가 소파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 나 왔어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엄마가 부스스 일어났다. 민영이가 엄마 옆에 앉았다.
“왔어? 안 추워? 밤에는 춥다던데.”
“10월 되니 좀 춥네요.”
“도시락 다 먹었어?”
“네. 맛있었어요.”
민영이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엄마 발치에 털썩 앉았다.
“엄마 그런데 나 아르바이트할까?”
“왜?”
“학원비에 책 값에..... 졸업 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졸업하고도 손 벌리니까 괜히 죄송해서요. 벌서 졸업한지 반년이 넘었어요.”
엄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민영이 어깨를 꼭 안으며 말했다.
“아이구 우리 딸 다 컸네. 그치만 지금은 돈같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만 해. 뭣하러 니가 돈 생각을 하니? 그리고 솔직히 너보다, 니 언니 대학원 다니는 게 더 비싸, 너는 돈 드는 것도 아니야. 호호. 걱정하지 마.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니 아빠 돈 많아. 걱정되면 시험에 붙게 공부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안 그래도 오늘 아빠가 너 힘드니까 차를 뽑아주던지, 아니면 엄마가 태워주던지 하라시더라. 넌 뭐가 좋아? 차를 뽑아줄까? 태워 줄까?”
“아니야. 그 정도는 너무 과분해. 지금처럼 지하철 타다가 힘들면 택시 타다가 하면 돼요. 이게 편해요. 엄마 힘들게 무리하지 마세요.”
“얘는, 엄마가 하는 일이 뭐니? 니들 뒷바라지하는 건데. 그러지 말고 내일부터는 엄마가 태워줄게. 아무튼 어서 가서 자 피곤한데.”
“네, 잘게요....... 근데...... 엄마, 그렇게 내가 피곤해 보이면, 나 아예 고시원이나 원룸 구할까?”
“그건 안되지. 우리 집이 이사 가면 몰라도, 너 혼자 사는 건 안돼. 세상이 무서워서 안돼. 아빠도 허락 안 하시겠지만, 엄마도 안돼. 우리 딸 혼자 사는 건 안돼. 말도 꺼내지 마. 엄마가 다 태워주고, 실어주고 할 테니. 잠은 집에서 자.”
“휴~ 알았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자.”
민영이는 방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둔 아침에 놓고 간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을 보니 부재중 전화도 문자도 하나 없었다. 하루 종일 현욱이를 포함해 아무도 민영이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이다.
민영이는 핸드폰을 다시 책상 위에 놓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지난 봄 현욱과 크게 싸운 이후로 둘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다.
먼저 민영이는 졸업을 하고, 회계사 삼수생이 되었다. 현욱이는 3학년에 복학해서 학교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스터디며, 공모전등을 쫒아다니는 학생 겸 취준생이 되었다. 서로 빡빡한 일정 탓에 주중에는 당연히 얼굴도 못 보고, 주말에도 여러 이유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가끔 만나 대화라도 할라치면, 민영이는 공모전이니 뭐니 다 쓰잘데기 없다고, 영양가 없는 일에 휩쓸려 다니지 말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현욱이는 공무원은 죽어도 싫고, 취업이던 창업이던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며 화를 내곤 했었다.
그렇게 싸울 때마다 민영이는 헤어지자고 하고, 현욱은 모두 본인이 가진 것이 없어서 이런 거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면 민영이는 또 짜증을 내며, 돈 때문이 아니라고 더 화를 냈다. 그렇게 둘은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웃음보다는 다툼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전화 통화와 카톡 횟수까지 서서히 줄어들었다.
만나기만 하면, 헤어지자 말자 싸우면서 봄이 여름이 되고 가을이 왔다. 10월, 완연한 가을이 접어들자 하루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민영이는 문득 3일째 생사확인도 안 한 것을 생각했다. 3일 동안 연락 한 번 없었던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 민영이는 알 듯 모를 듯 허탈함과 서운함이 섞인 초라한 기분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잠시 생각하던 민영이는 결국 감았던 눈을 뜨고 현욱에게 전화를 했다. 현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영이는 전화를 끄면서 ‘전화해봤자, 막상 할 말도 없는데 왜 전화를 하고 앉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차가운 생각에 섬뜻 놀랐다.
이번에는 차가운 본인 마음이 왠지 미안해서 카톡을 보냈다.
[뭐해? 나 이제 들어왔어. 난 잔다. 잘 자.]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민영이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밍영이야?”
혀 꼬인 목소리였다. 전화기를 통해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민영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술 마셔?”
“으응... 엥티 왔어.”
“놀러 갔어?”
왠지 현욱이가 한심하게 느껴져 민영이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응, 교수님도 오공, 재밌엉 흐흥.... 우리 예쁭아.”
현욱이는 술이 꽤 취한 듯 혀가 꼬여있었다.
“밍영아.... 난 너 보고 싶은데, 넌 나 안 보고 싶어? 있지 내가 말이야..... 생각을 해봤는데.... 있지 난 너 없으면.... 안..... 돼.....”
“됐어. 들어가서 얼른 자. 복학생 주제에 눈치도 없이 그런데 껴서 뭐하는 거야. 추태 부리지 말고 얼른 자.”
민영이는 한심한 현욱의 몰골에 더 피곤함을 느꼈다.
“.... 밍영아. 너....... 나 차면 안돼..............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 외로워서 안돼. 어떻게 버티라고, 나 혼자. 나 진짜 열심히 노력한다. 너 고생 안 시킨다.”
민영이는 옷을 다 갈아입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 이제 자야 해. 니 술주정 받아줄 여유 없어. 그만해.”
현욱은 잠들었는지 민영이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었다. 민영이는 인상을 쓰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때
‘오빠앙, 어서 와요. 교수님이 오빠 찾아오래용. 오빠가 와야 재미있지요.’
민영이의 귀에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영이는 눈을 번쩍 떴다.
‘어! 누구?.... 아~ 영... 은이?,.... 나..... 전화해야 하는 데엥......’
‘아잉, 오빵. 거기서 누워있으면 어떡해용? 추운데 들어가용, 어머 오빠 잘 걷지도 못하넹, 나 잡아요. 나한테 기대요. 내가 잘 안을 수 있어용. 어.. 거기 전화기 잘 잡아요. 떨어지겠어용. 어? 전화 통화 중이예용? 오빠? 오빵?’
‘어. 어.... 어..’
“오빠? 내가 받을까용?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자애가 현욱의 전화기를 들었다. 민영은 순간 대답을 못하고 전화기를 꺼버렸다.
민영이는 눈을 뜨고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현욱 오빠가 바람을 피거나 하지 않은 것은 잘 안다. 게다가 학교 다닐 때 더 여시 같은 것들이 더 대담하게 꼬리 친 적도 있었다. 그때는 화가 나긴 했지만, 이런 묘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은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뭔가 복잡하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민영이는 침대 옆에 스탠드 불을 켜고, 지은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지은이는 의외로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안 잤어?”
“이제 1시인걸,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그러게.... 넌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창수 오빠랑도?”
“그럼, 지금도 창수 오빠 스튜디오야. 손님도 별로 없어서 맨날 여기서 공부하고 놀고 먹고 둘이 소꿉장난 하면서 지내 호호.”
“그래...... 난 현욱 오빠랑 헤어지려고 하는데.”
“에이. 몇 번째냐? 이번엔 뭣 땜에 싸웠어? 그리고 헤어지네 마네 말만 하지 말고 진짜 딱 헤어지면 그때 말해.”
“아니야. 이번엔 진짜 헤어졌어.”
“왜? 뭔데?”
“그냥 바쁘니까.”
“니가 무슨 연예인이냐? 바빠서 헤어지게? 아이돌들도 다 연애하거든.”
“그러게......”
“별일 아니면 끊자. 오빠가 라면 먹으래.”
“그래 뿔기 전에 가라.”
“응, 내일 통화하자.”
“그래 밤에 전화해서 미안해. 잘 자.”
민영이는 전화를 끊고 가만히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현욱의 옆에 여자 목소리가 들려도 화가 나지 않았다.
‘키도 크고, 잘 생겼으니 여자가 붙기도 쉬울 거다. 아직 학생인데, 나처럼 졸업해서 조급하지도 않을 현욱에게 다른 여자가 붙어도 내가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영이는 핸드폰을 열었다.
[오빠. 이제 진짜 헤어지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한참을 채팅 창을 바라보았다. 메시지 앞에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민영이는 무표정하게 ‘헤어지자’라는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동상처럼 바라보았다.
현욱은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오줌이 푹포수처럼 콸콸 나왔다. 오줌을 다 누고 물을 내리는데 왈칵 토악질이 올라왔다. 현욱은 변기에 머리를 대고 토를 했다.
어젯밤에 먹은 라면 면발과 김치 조각들이 변기 위에 쏟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노란 위산이 나왔다. 현욱은 물을 내리고 맹물에 입을 헹궜다. 칫솔을 찾지도 못했지만 칫솔을 혀에 댔다가는 또 토할 것 같았다.
현욱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욱이 자던 자리에 그새 누군가 대자로 누워 있었다. 방에는 술 취해 널브러진 애들로 앉을자리도 없었다. 현욱은 잠바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왔다.
찬 바람이 휙 머리를 때리자 현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봤다. 카톡이 와 있었다. 민영이었다.
[오빠. 우리 진짜 헤어지자.]
현욱은 메시지에 답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닫았다. ‘에휴.. 또 왜 이러지.’ 라고 중얼거렸다. 현욱은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숙소 마당 벤치에 앉았다.
마당에 고기 구운 흔적과 소주병들 틈에 반쯤 얼어가는 물병이 보였다. 현욱은 느릿하게 걸어가 물병 통째로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핸드폰을 다시 봤다. 8시였다. 민영이가 학원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현욱은 민영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응, 지금 메시지 봤어. 또 왜 그래. 어제 술 많이 먹어서 그래? 아니면 나 엠티 와서 화난 거야? 지난번에 다 이야기했잖아. 너도 엠티 가도 된다고 했잖아. 교수님도 오는 엠티니까 가라고 허락해놓고 왜 그래. 화 풀어.”
“화난 거 아니야.”
“에이~ 화났으면서. 흐흐 민영아, 그러지 마. 나도 학교 생활해야지. 너랑 단 둘이 붙어 다니던 1학년 아니잖아. 넌 졸업도 했으면서 사회생활도 이해 못하는 거야? 공부만 해서 잘 모르나 본데 이렇게 인사도 하고 잘 지내야 취업도 하는 거야.”
“휴...... 그만하자”
“그래 그만하자.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 난 머리가 너무 아프다. 간만에 많이 마셔서.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날까? 일요일에 만날까?”
“오빠.”
“왜?”
“나 진심이야. 헤어지자. 나 이제 오빠가 며칠 연락이 없어도, 엠티 가서 여자애들이랑 술을 먹어도 화 안나. 또 오빠가 돈을 쓰건 안 쓰건, 취업을 하건 말건, 신경도 안 쓰인다고. 그러니까 그냥 각자 열심히 살자. 알았지? 이젠 연락하지 마. 안 받을 거야. 나 이제 수업 시작이야. 끊어.”
뚜뚜뚜. 전화가 끊어졌다.
“하아~”
현욱이는 핸드폰을 끄고,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고개를 숙였다. 민영이의 마음에도 없는 헤어지자 타령에 짜증이 났다. 한 번 헤어지자고 말 한 뒤부터는 툭하면 그만하자 타령이었다. 이젠 달래주기도 지쳐갔다. 빨리 민영이가 시험에 붙던지 포기하던지 하면 좋겠다고 현욱은 생각했다.
그때 여자 후배가 하품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현욱에게 인사하며 옆에 앉았다.
“잘 잤어요. 오빠?”
후배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현욱에게 내밀었다.
“나 담배 안 피워.”
“에이~ 뭔 소리예요? 어제 많이 폈는데요? 여자친구분 한테만 안 들키면 된다면서요? 호호호.”
후배가 웃으며 먼저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마셨다.
현욱은 담배 연기에 순간 인상을 썼다. 그러나 금세 손을 내밀었다. 여자 후배가 담배와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현욱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속이 싸해지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현욱은 담배를 피우면서 민영이를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 알바비도 많이 들어오니까. 모처럼 민영이에게 삼겹살에 소주를 사줘야겠다고 말이다.
현욱은 담배를 입에 문채 기지개를 크게 켰다.
민영이는 가방을 메고, 식탁앞에 선 채 엄마가 준 선식을 마셨다.
“엄마, 아침엔 차가 많이 막히니까, 나 그냥 전철 타고 갈게요. 대신 밤에 학원으로 와주세요.”
“왜? 전철 타면 아침부터 사람들한테 치이느라 힘들 텐데. 엄마가 태워 줄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도 이렇게 전철 타고 버스 타는 게 하루에 잠깐은 있어야 기분 전환도 되거든요. 그리고 엄마 나 핸드폰 해지할래요. 오늘 통신사에 전화해서 해지 신청할 테니까 저녁때 전화 안 된다고 걱정하지 마시고요. 11시까지 학원 앞으로 오시면 돼요. 보통 학원 자습실에 있으니까 급한 일 있으면 학원으로 전화 주세요.”
“그래, 우리 딸, 참 예쁘다. 고마워. 용돈 어제 입금했으니까 도시락이 입맛에 없으면 맛난 거 사 먹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참. 생각난 김에 오늘 한의원 가서 온 가족 한약이나 한재씩 지으러 가야겠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민영이는 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