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때

by 김비주

생각은 행위와 일치되기 위해 얼마나 간결해져야 하는가?

간결하단 말이 맞을까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면

어긋난 주파수 아닐까

가끔 공명은 소리를 진동시키지 않고 응시만으로 서로를 향해 흔든다면

빛의 파동과 실체가 있어서 이루어지는 모든 감응은

내가 살아 있음에 인지 됨이다.

내가 사라짐에 대해 경험하지 못한 인식의 믿음은 어디까지일까.


가끔 몸이 움직이는 순간 집중과 몸이 움직이면서 벗어남의 순간을 환희라고 한다면

마주치는 모든 사물과의 감응은 그저 명징한 아타락시아다.


모든 행위의 순간은 몰입과 벗어남의 찰나의 순간이자

영원의 순간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언어의 한계는?

그 언어의 부림을 자유롭게 표현하여 의식에 걸리지 않는다면

가끔, 또 고요한 세계에 들 수 있다.

2024. 11.24 오후의 단상

생각으로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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