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애송시

by 김비주

재즈처럼 나비처럼

-리 오스카, <나의 길>



유하



서른셋, 갈수록 멀리 쓸려가는 삶

재즈처럼, 예정된 멜로디의 행로 바깥에서

한참을 놀다, 아예 길을 잃었네

잠파노처럼 모래알을 부여안고 울기엔

너무도 이른 나이, 나만의 이름 모를 샛길에

토마토를 심고 아무도 찾지 않는 열매를 위해

하모니카를 불었지 바람의 입술을 빌려,

멜로디의 길을 잃은 연주자에게, 알 수 없는

그리움만이 나침반이 돼주었어

당신...... 독약의 감미로운 향기

사랑이 나를 즉흥적으로 변주할 뿐이었네

마음은 그냥 샛길의 연못에 남아 놀고 있는데

육신이 뒤꿈치의 끈으로 북을 두드리며

세월을 떠밀고, 차가운 심장의 하모니카여

나 상처 없이, 내일도 없이 흘러가리

무덤도 잡을 수 없는 저 나비의 발길로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이 깊을 때 읽는 이 시는 쓸쓸하다 못해 감미롭다.

이 시를 읽으면 지나간 청춘이 송두리째 쏟아진다.

그리운 청춘의 길, 리 오스카의 길처럼

천재적인 하모니카 연주자의 감미로운 음악이 쏟아지는

길 위에 우리는 정처 없이 떠밀려 왔는 지도 모른다.

불안한 인생길, 이 길 위에서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떠밀리듯이 걸어온 길, 걸어가는 길.

이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 시를 쓸 때의 시인과 비슷한 시간을 살았다.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그의 열려 있는 귀를 부러워하며

시인의 시들을 읽고 좋아하게 되었다.

영화감독의 시각적인 요소까지 갖고 있는 시인의 시들이

한 때는 삶을 위로하기도 했다.


시인은 서른셋의 나이에 사랑과 죽음, 이별까지도

불완전한 미래까지 부드러운 음악에 녹여내며, 차가운 심장의

하모니카여라고 외친다.

알 수 없는 길, 나의 길이자 우리의 길이기도 하다.

청춘에 떠밀려 노년에 이르러서도 이 시는 읽을 때마다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육신이 뒤꿈치의 끈으로 북을 두드리며

세월을 떠밀고, 차가운 심장의 하모니카여


아직도 난 차가운 심장의 하모니카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장이 차가워질 때마다


당신...... 독약의 감미로운 향기

사랑이 나를 즉흥적으로 변주할 뿐이었네


시인이 그리워하듯 상처 없이 흘러갈, 죽음도 잡을 수

없는 나비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나도 상상해 본다.

그리하여 이 쓸쓸하고 적막한 날, 이 시는 감미로운 향기가 되어

즉흥적인 변주를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삶의 길이기에.


2024.11.6


책이 온 지 한참이 지났다. 광주일보에서 발간하는 《예향》

에 보낸 <나의 애송시>이다.

12.3 비상계엄령으로 한참을 넋 놓고 지나간 시간들이다

곧 마무리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2년 전도, 지금도 지면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5.2.15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