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비주 Nov 02. 2022

거리에서


무성한 잎들이  듬뿍 물들어  있다.

감정이 절정에 이르다.

눈부신 성장을  도드라지게 뽐내며 서있다.

가슴이 먹먹하다.

알 수 없는 울렁임이 나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김현승 시인은 그의 시에서 나이 40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싶다고 말한다.

30년 전에 읽고 가슴 먹먹한 그날이 그리운 건 지천으로 나부끼는 빨강과 노랑의 행렬에서 나도 물들고 싶은 걸까

사십을 훨씬 지나버린 사색의 시간은 하늘색 스카프 되어 하늘거린다.


가로수만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내 가슴에도 물들어 있다.

나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 가을은 장성의 계절을 훈장처럼 달고 있다.

기가 죽는다.

가슴속 깊이 올라오는 눈물샘이 잠시 뇌를  자극하고, 거리의 축제에  또박또박 유달리 발걸음 소리가 명료하다.


미우라 아야꼬의  '울리지 않는 바이올린'이라는 수필집에서 그녀는 외로움을  '한밤에 귤을 까먹는다'라고 말한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들릴 것 같은 절체절명의 고독, 귤 까는 소리는 많은 날을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오늘 거리 한가운데 놓아버린 내 영혼이 메마른 기침을 하고 밭은 가래를 모은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밤새 기침을 하셨다.

혼자서 견딜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시간을 두세 시간 간격으로 따뜻한 차를 준비해서 가져가는 것으로 갈음했다.

어머니는 쪽잠으로 밤을 보내시고 아침이면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가르마를 비녀 뒤로 늘 능숙하게 타시곤 야위고 굳은 마디를 가진 손으로 쪽을 야무지게 지었다.

모진 밤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막내딸의  분주한 일상을 도왔다.

장롱의 반질거림, 행주 같은 걸레의 청결함,

대청마루와 아이들의 마알간 얼굴에서도 뽀드득 소리가 났다.

'흥, 해라'

엄마가 손주들의 얼굴을 씻기실 때마다  아이들은 햇빛에 반짝이는 뽀얗고 매끄러운 조약돌처럼 빛이 났다.


오늘처럼 거리에서 내지르는 나뭇잎들을 보다가  깊은 가을 속으로 걸어간다.

가을은 오롯이 밤을 새우며 잔기침을 쉬지도 않고 해대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지친 영혼의 피폐함이 '가슴앓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천식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어머니의 삶이 몹시도 울렁거린다.

어머니를 진찰하셨던 장기려 박사님의 말씀,

"할머니, 화병입니다.

참지 마시고 하고 싶은 말, 하시고 싶으신 것 다 하세요"


어머니 가신지 벌써  열일곱 해나 되었다.

그때 여섯 살이던 큰애는 스물세 살, 어머니를 끄집고

다녔던 둘째 아이는 스물이 되었다.


가을은 송두리째 가슴을 울리고 나는 먹먹한 가을을

난다.


2014.11.8


지난가을 단상이 오늘 그리운 날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이제 어머니 가신지 25년, 아이들의 나이는 서른하나,

스물여덟이 되었다.

기록은 소중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 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