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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Nov 01. 2022

가을 놀이

햇빛 속에 앉았다.

거실 창은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따뜻하고 뭉근한 햇살, 인상주의 화가들이 잠시

생각났다 사그라져 들었다.

슬픔이 뽀얗게 마를까 봐 소파에 기대어 글을 쓴다.

언제부턴가 가을 소국도 눈에 띄지 않고 가을 화분도

사지 않았다.

노랑과 검붉은 소국이 가을이 옮을 알리고 보라와 하양 소국까지

앙증맞은 기쁨을 주던 날들이 코로나 시국에 많이 사라졌다.

보라색 구절초가 좌광천에 잠시 피더니 빠르게 찾아오는 추위에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감국이 피는 것도 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다.

추운 계절이 오면 햇빛 한 줌에도 일렁거리는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세상은 작은 햇빛 나눔 같다.

늘 있어와서 모르고 지나는 햇빛, 공기 같은 것들이 어느 날, 날 어루만진다.

가을색은 노랗고 붉기만 한 것이 아니라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는 진한 재색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 잎의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 커피를 내려서 가을색을 더할까 생각 중이다.

아침에 의 이불을 바꿔주며 차가운 겨울 속으로 내려갈

시간을 맞는다.

모처럼 유리코 나카무라의 음악을 듣는다.

유년이 아름다웠던 여자,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다.

년 만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이정은 작가의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읽는 중이다.

가을 한 폭을 온전히 사서 가을 놀이 중이다.


2022.11.1


십일월의 첫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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