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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Nov 12. 2022

그해 여름*은 모노톤으로

숨겨놓은 사랑을 끄집어낸다 '그해 여름'은 초록이

빗방울에 돋고 주인이 두고 간 집에는 어린 딸이 마을을 이고, 월북한 빨갱이 아빠의 그늘을 뒤집어쓰고 있다.

  시간이 몇 개의 다리를 건널 때 편백나무 향은 사람을 부르고 군사정권의 마지막은 고운 첫사랑을 조각냈다


  비가 올 때마다 만어사의 물고기들이 노래를 부르고

딸의 유일한 기억의 가족 나들이가 네 살에 머물러 있을

때, 아버지가 남긴 마을의 도서관은 활활 타오르는 불

더미 속으로, 지워지지 않는 상처는 비릿한 바람을 몰고 최

루탄 속으로 굴렁대며 캑캑거린다


  흑백영화처럼 나의 청춘은 영화 속에 돌돌 말려 오랜

시간을 끄집어내야 한다 사라진 모든 것은 풋내 오른 오월의 나무들을 안고 잃어버린 퍼즐을 초록이 우거진 모든 곳에서 복원해야 한다


  눈물이 숨은 가장자리엔 잃어버린 연인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애절한 상심이 화면을 뚫고 나와 먼지처럼

폐에도 쌓인다


  사랑, 고귀하고 상습적인 이야기의 뒤 끝에 매달린 정치

의 폭력성과 인간의 나약함이 비에 젖은 풍경을 만든다


  아직, 가벼워지지 않는 내 무지의 뒤편에는 절대선이라

는 편협한 논리를 가슴 밑바닥에 묻어둔 채, 풍경이 탁하게

게 덧칠된다


* 영화 제목


시집《 그해 여름은 모노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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