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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Nov 16. 2022

핀쿠션에서 바늘 찾기



찾았다 드디어.

몇 날을 고심했는지.

아침저녁으로 침대 위의 이불들을 손으로도 쓸어보고 내 발밑에 진을 치는 깜이도 살짝 내보내고  혼자만의 은밀스러운 숨은 보물 찾기를 몇 날이나 했는지.

아직까지 우리 식구가 무사한 건 아직도 어딘가에 그대들이 꽁꽁 숨어버린 덕분이었다.

이제야,

그대들과 기쁜 만남을 다시 하다니 휘파람이 저절로 난다.


요즈음 나는 자수 삼매경에 빠져있다. 군민대학의 평생교육강좌 퀼트 수업을 받으면서 자수와 만나게 되었다.

알록달록한 색실들이 옹기종기 모여 내 처분을 기다린다.

천에 먹지로 도안을 뜨고 구상한다.

어떤 자수와 어떤 색을 선택할 건지.

선생님이 처음으로 가르쳐 주었던 러닝 스티치와 백 스티치는 우리 걸로 치자면  홈질과 박음질이다

동양 자수가 아닌 서양 자수라서 스티치의 이름도 다 서양 말이다.

레이지 데이지 스티치 꽃 이름도 서양 꽃이다.


자수가 수입되어 여고시절에는 자수를 가사 시간에 꼭 해야만 하는, 그래서 시험 대신 실기 점수로 대신했다.  갑자기 아픈 기억이 생각난다.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한다면 자기 자랑 같지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어려웠던 집안 사정 때문에 자수 준비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결국 빵점이 되어버린 가사 때문에 전교 등수가 100등이나 밀렸다.

선생님은 아시는지?

임신 중이어서 남산만 한 배를 힘겹게 내밀고 다니면서 출산 전전 날까지 수업을 하셨다.

까마득한 옛날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선생님의 얼굴도 스쳐 지나가는데 성함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자수를 꽤나 좋아했고 수를 예쁘고 깨끗하게 잘 놓았다. 지금도 그 당시 놓았던 쪽 이불감 여섯 쪽이 서랍 속에 변치 않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드디어 나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

이제는 준비물을 사지 못해서 수업시간마다 애매한 포지션으로 창밖을 보곤 했던 씁쓸함에서 벗어나 천 위에 나의 세계를 열어보는 것이다.

잊어버린 스티치들을 깨우쳐 주는 선생님을 따라 한 땀 한 땀 시간에 정성을 입혀  꽃이 피고 사탕이 도드라지고, 발레 슈즈와  먹음직스러운 딸기가 생겨 났다.

선생님의 칭찬과 내 걸 가지고 다니시며 다른 이 들에게 보여줄 때는 어찌나 나 자신이 대견하던지. 그런 걸 다 놔두고라도 자수는 정말 재미있다. 한 땀 한 땀 공들인 만큼 내게로 온다. 또한 온갖 물상들이 내 생각에 의해 새 모습으로 생겨 난다. 너무나도 예쁘고  대견한 모습 때문에 한참 삼매경에 빠져 지새는 날도 생겼다.


그런데 한참을 빠져 있다 어느 날 문득 많은 바늘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리무중이다. 몇 날을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핀쿠션에 바늘을 꽂아 둔 것 같은데,

핀 쿠션에는 흔적도 없다. 어디서 다 찾아내야  하는지, 무거운 짐  하나가 가슴을 계속 짓누르고 있었다.


오늘도 일어나서 어제 썼던 바늘을 쓰기 위해 핀쿠션을 꺼냈는데 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리저리 핀쿠션을 살펴보다 빨간 수실이 빠져 버린 바늘 하나가 거의 흔적도 없이 핀쿠션 속에 묻혀 있다는 걸 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핀쿠션을 조심스럽게 더듬기 시작했다.

도대체 조금도 기미가 없다. 포기하지 않고 수없는 조심스러운 만짐 속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 하나가 손끝을 살짝 스친다.

핀쿠션을 뒤로 돌려서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다 드디어 가장 큰 호수의 바늘 하나가 쑥 얼굴을 내민다.

드디어 자신을 드러 낸 것이다.

연이어 간발의 차이로 자신들을 드러내며 올라오는 것이다.

끊임없는 내 손의 조력의 결과였다.

여섯 개나 되는 바늘을 모두 끄집어 내고는 생각에 잠시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핀쿠션이 바늘을 품은 것처럼 내 속에도 꼭꼭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보이는 모든 것과 보는 모든 것의 대견함 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날 들이 늘어간다.

강윤후 시 '성북역'은 이렇게 말한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가 나는 알게 되었지 이미 네가 투명인간이 되어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 한다'


  발걸음 하나에도 뜻이 있듯이 내게도 곁에 있는 그대를 기다리지만 않고 적극적으로 만나려 한다.

내게 주신 시간에 따뜻한 시각을 곧추세우고 글쓰기 삼매에 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 한번 보고 가슴 한번 쓸어 본다.


20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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