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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Nov 29. 2022

비 오는 날 아침에

늙은 호박을 정리했다.

아침 산책 후 일요일 아침이 분주해졌다.

아직까지 늙은 호박을 만난 적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올해는 호박이 두 덩이나 들어왔다.

거실 한쪽에 장식물처럼 있던 걸 해가 지나기 전에 정리하기로

하고, 한 덩이만 우선 칼로 잘라 속을 끄집어내고

껍질을 벗겼다.

유난히 예쁘고 고운 색의 호박 속살은 아련한 감회를 러 일으켰다.

내가 정말 주부가 됐나 보다.

호박 손질도 하고, 호박전도 두장 부쳐서 딸과 함께 먹었다.

참 수고로움이 많은 것들을 접하다 보면 새삼 모든 어머니들이 생각난다.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비어 있는 화분들을 정리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은 동종의 식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더 이상 사지 않겠다는 약속을 4년째 지키고 있다.

저 빈 화분에 이미 명을 달리 한 식물이 생각나고 그 화분에

또 다른 식물을 키우고자 하는 욕구가 잠시 일었다.

이 욕구의 한 끝을 올해까진 견디어보기로 한다.



필라테스를 하고 온 후, 빈 병을 끄집어내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어 사과잼을 만들었다. 덜 뭉그러진 사과알이 입안에서 무너지며 아삭함을 잃지 않게 노력하는 쨈이 되어볼까.

월동 준비를 드레스룸에서 시작하여, 모든 옷장들을 마무리하고

화분들을 안으로 몇 개 들여왔다.

사과는 적당하게 뭉그러지고 화분의 자리 배치로 집안의 곳곳이

새로운 숨을 쉰다.

어제는 눈뜨자마자 글을 쓰고 싶었으나 참기로 하였다.

글을 쓰는 대신 주변을 정리해보자.

그리고 커피 한 잔에 창 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호사를 누려 보자.

오후 4시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커피를 드립 해서 조금은 흐린

오후를 충분히 즐겼다.

보지 않고 쓰지 않고 멍하니 그저 좋았다.

집은 고요했고 생각은 단순해졌다.

냥이들은 깊은 오수를 내 방에서 즐긴다.

모두가 참 고요한 시간이다.


단순해진 시간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를 오늘 꺼낸다.

어쩔 수 없는 글의 욕구를 가만히 내보인다.


2022.11.29 비 오는 날, 아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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