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간다
서면 은아 극장
날들이 삐걱거리고
슬픔이 새되어 날아오를 때
애국가는 화면에 돋아 나고
난, 갈 데 없는 스물의 청춘을
노동이 끝난 중간지점에서
슬픔을 흘려버릴 은아 극장에 간다
화면은 늘 걸어가는 중이고 나의 슬픔은
진행 중이다
가난을 턱밑까지 기르다 깜빡 버린
대학의 입구에서 표절은 나의 것
삶을 표절하다 노동으로
굽이 닳은 구두 밑창을 통째로
던져버리고
삶은 진행 중 눈물이 표피처럼
온몸을 적시고 영화는 수렁에 빠진
내 생을 희석 중이다
극장은 순애보처럼 나의 첫 순정을
모두 앗아가고
어둠 속에서 동그마니 나의 생은
홀로서기이다
버스가 구르는 가을날 난 아직도
은아 극장에 간다
머릿속에 화면은 늘 on
슬픔은 공기처럼 떠다니고 세월을
지나 서면 어딘가에 떠다닐
은아 극장에 간다
시집《 오후 석 점, 바람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