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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Nov 30. 2022

은아 극장


극장에 간다

서면 은아 극장

날들이 삐걱거리고

슬픔이 새되어 날아오를 때

애국가는 화면에 돋아 나고

난, 갈 데 없는 스물의 청춘을

노동이 끝난 중간지점에서

슬픔을 흘려버릴 은아 극장에 간다

화면은 늘 걸어가는 중이고 나의 슬픔은

진행 중이


가난을 턱밑까지 기르다 깜빡 버린

대학의 입구에서 표절은 나의 것

삶을 표절하다 노동으로

굽이 닳은 구두 밑창을 통째로

던져버리고

삶은 진행 중 눈물이 표피처럼

온몸을 적시고 영화는 수렁에 빠진

내 생을 희석 중이다


극장은 순애보처럼 나의 첫 순정을

모두 앗아가고

어둠 속에서 동그마니 나의 생은

홀로서기이다

버스가 구르는 가을날 난 아직도

은아 극장에 간다

머릿속에 화면은 늘 on

슬픔은 공기처럼 떠다니고 세월을

지나 서면 어딘가에 떠다닐

은아 극장에 간다


시집《 오후 석 점, 바람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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