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장을 보러 갔다 장이라야 홈플러스나 작은 수퍼에 가겠지만, 난 오늘 은행에 들려 깨알같이
쏟아질 근심의 입금액을 확인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점심을 채근하기에 땡초김밥 하나 돈까스 김밥 하나
날이 몹시 추워 오래된 사과들의 허리를
잘라 남겨진 배와 함께 뱅쇼를 만들기 위해 설탕 한봉지 슈퍼에서 길어 왔다
무성한 말들이 추위에서 사라지고 푹 눌러쓴 모자의
체온감이 조금은 따뜻한 날, 손에 낀 다섯 손가락의 장갑이 희망을 실어 나른다
싸게 판 두부 네 모 하얀 봉투에 매달려 오며 내일의 따뜻한 밥을 도와 줄 것이다
집으로 돌아 온 나에게 알싸하게, 김치와 참기름
고추장과 버물러진 딸아이의 비빔국수가 사랑을
건네고 모처럼 같이 즐기는 소박한 식탁이 세상을
한껏 동여매고 크크거리는 낮은 웃음 사이로
우리의 고단함은 뭉근하게 끓여 질 뱅쇼처럼
2016.1 20
시집《오후 석 점, 바람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