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밤을 쳐볼까, 아들
by
김비주
Jan 23. 2023
밤을 친다고 한다.
난 막내였고 큰 오빠와 나이 차가 20년이나 됐다.
막내 오빠하고도 6년 차니 오빠들과 언니와도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병아리 막내였다.
많은 기억 중에 엄마가 떡을 찌시던 시루에 붙이던 시룻번이다.
그 해 떡이 설익지 않고 잘 익으면 한 해가 좋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가마에 불을 때어서 떡을 찌던 정성이 참 정갈하다고 생각한다.
시룻번을 얼마나 정성스럽고 이쁘게 부치시던지, 뗄 때 만지면 잘 익어 조금은 딱딱하면서 떨어지던 그 독특한 감촉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난다.
설에 기억나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추석에 동그란 상에 온 가족이 모여서 송편을 빚어 시루에 쪄서
엄마가 꺼내서 참기름을 둘러서 낼 때마다 마법 같았던 내 유년의 기억이 이렇게 따뜻하게 나를 지피는 것은 온전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것 같다.
난 내 어머니처럼 모든 걸 수작업으로 하지 않는 시대에 산다.
내, 아들 딸에게 줄 수 있는 명절의 기억도 한정적인 시대에
산다.
그래서 올해는 드디어 아들에게 일거리를 하나 주었다.
밤을 까라고 했다.
차례와 제사 때 내가 해보니 많은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할 일이 많아서 깐 밤을 사다 썼다.
아들이 엄마 힘든 일이니 흔쾌히 해주겠다고 한다.
밤을 까준 걸 내가 마무리하고 다듬었다.
그러면서 다음을 부탁했다. 본인 손의 근력을 사용해서
잘하는 일을 주었더니 자랑스러워한다.
나도 좋았다.
딸은 10년 차 엄마 보조로 전을 부치는데 이젠 아주 능숙 능란해졌다. 알아서 잘한다.
표고버섯의 십자가 점점 멋지게
파인다.
나도 나물과 탕국을 어떻게 하면 담백하고 깔끔하게 맛을 낼까
늘 생각한다.
탕국은 느끼지 않고 담백하고 시원하게 끓여내는 게 목표다.
처음엔 온갖 버섯종류를 함께 썼다. 그러다 표고와 무, 두부, 소고기, 파 만을 작년부터 사용했더니 훨씬 담백하고 시원했다.
국의 모습도 좋았다.
무가 중요하다. 설엔 무가 맛있는 계절이다.
사각하고 부드러움이 얇은 네모로 착착 감겨 탕국을 끓이면
입에 감긴다.
그래서 올해 설은 조금 수고로웠지만 딸이 잘 만들어준 전과
튀김이, 아들이 까준 밤이, 내가 끓인 탕국, 남편이 가져온 산청 곶감이
그중에서도 더욱 좋았다.
밤을 깐 건지 친 건지 모르지만 함께한 시간이 있어 좋았다.
명절을 어제 꽉 차게 기분 좋게 시작했네요.
2023.1.23 아침 단상
keyword
아들
기억
엄마
7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김비주
직업
시인
김비주 작가의 브런치입니다. 시를 좋아하던 애독자가 40년이 지나서 시인이 되었어요. 시를 만나는 순간을 시로 기록하고 싶어요.
구독자
53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도라지 냄새 좋아요
1월에, 설을 지나며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