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비주 Apr 21. 2023

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시작하며


칼을 버리기로 했다.

무딘 칼로 익숙해진 나는 명절에는 칼을 간다.

사은품으로 받았던 제법 그럴듯한 상표로 왔던

칼 세트들이 무겁기만 하지 크게 쓰임이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지만, 지난날 자본의 매매로 온 것이어서

미련이 남아서 버릴 수 없었다.

친정엄마에게 받았던 칼은 날이 더 없어서 오래전에

버렸고 받았던 3세트 중에 한 세트에서 일부의 칼을

그나마 쓰고 있다.

일 년에 한 번쯤 명절에 동서네가 오면 칼의 무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그 불편함을 조금은 알고 있어서 딸이 쓰기에 알맞은 칼세트 작은 걸 사서 갖고 있다.

요즈음 싸고 좋은 칼들이라며 광고에 올라오는데 눈에 확 들어온다.

칼을 하나 살까 망설이는 중이다.


칼을 버리지 못한 내 무딘 감각과 칼을 버리는 방법에 대해서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해 망설였던 시간이 칼 버리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한 달 전에 일부를 버리고, 오늘도 잘 포장해

버리기로 했다.


문득 김훈의 《연필로 쓰기》첫 장을 펼치자 생각이 쏟아졌다.

내 속에 있던 무딘 칼들을 버리기로 했다.

잘 들지도 않은 많은 칼들을 난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걸까.

칼을 버리지 못했던 무심함과 무능함과 때라는 것이 함께

돋았다.


어쩌면 잘 드는 칼을 살 수도 있겠다.


2023. 4. 21 아침 생각

작가의 이전글 땅 위에도 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