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돋는 날에

by 김비주




비가 온다고 누가 말합니다

비 뒤에 숨은 얼굴이 꽃과 같이 사그라져 갈 때

보탠 적 없는 바람이 귀를 잡아당깁니다

엉성한 노을이 오기도 전 비는 바람을 몰고 갑니다


오래전 그 자리에 있던 당신

더 오래전 그 자리에 있던 당신

더더더 오래전 그 자리에 있던 당신


생각을 멈추면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의 뒤 언저리에 일어나는 일들이

꽃피고 지는 일처럼 어느 곳을 지나왔을 거라고

내리는 비 속에도 여울지는 일입니다


한점 한점 모아서 몸의 기울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척추를 곧추 세우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깊어진 빗방울처럼 떨어뜨립니다


한데 서있거나 떠 있어도

똑같은 속도로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 거리를

생각에서 옮겨봅니다

비가 돋습니다



202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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