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

by 김비주


산책길은 단조로워졌다.

봄의 찬란함과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넘어서

폭염과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서 드러나는

단조로움과 건조함, 삭막함까지 함께였다.

그래서인지 연분홍의 '꽃범의 꼬리'는 너무나 아름다워

멀리서도 눈을 끌었다.


모과나무에도 모과가 열리고 열리지 않는 나무도 여름을

지나고 있다.

제 잎을 모두 갈색으로 바꾼 아이도, 쑥부쟁이의 초라한 꽃 피우기도 지난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늦게 핀 배롱나무도 군데군데, 그나마 산책하는 이의 단조로움을 덜어주고 있다.

몇 번의 바꿈으로 꽃을 피우던 장미도 피곤함이 드러났다.


똑같은 풍경과 똑같은 길에서 다른 모습을 읽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무의미해질 때, 늘 반복이란 틀을 조심스럽게 껴안는다.

그래도 바람은 조금 선선하고, 하늘은 높아졌다.

밤의 시간이 길어지고 매미 소리들이 선선하게 들린다.

나도 모르는 새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202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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