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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Apr 03. 2024

비오는 날의 소고



떨어지고 있다 구겨지는 생들 물방울의 속도로 낙하하는

둥근 세계가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헤매일 때 오랜 시간을 움켜잡은 망설임이 툭툭 부서지고 있다

모딜리아니, 긴 목의 에뷔테른이 저 세상으로 신호를 보내고 책의 지문은 무거워진다

초록 요정들이 옷을 짓고 말라가는 쪽의 음울이

거세어지는 화면을 넘어서 시린 이를 건드린다

덜그럭거리는 아침, 풀잎의 냄새를 건너 열심히 가는 중

메마른 대지를 가로지르고 물방울의 낙하가 그립다

치솟아 오르던 풀들이 추위를 감싸고 손바닥을 두드린다

톡톡톡 떨어지는 생각들 이불 속은 평온하다

창문의 시야가 텅텅 빈 들을 나르고 하나둘 떨어지는

물방울의 노래로 젖어간다

새는 페루에서 죽고 로맹가리 바다에 잠들다

바다의 물방울들 다시 태어나고


늘 망설이는 시간, 젖어서 건너던 일상을 접어가는 오후

말을 아끼던 세계가 젖어 있다

물방울의 오랜 망설임이 걸린다



시집«봄길, 영화처럼»에서


봄, 시집을 소환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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