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정치

by 김비주


한 여름의 인내가 절정에 치달은 날

에어컨의 신음 소리를 귓가에 흘리며

창문을 연다

선풍기마저 허덕거리던 오후

뜨거운 바람 속으로 세상을 보내고자

힘없는 발길질을 날린다

에어컨처럼 젊잖은 풍문들이 귓전에 떠돌고

선풍기처럼 달그락거리는 진실이

끄끄거리고 있다

뜨거운 열기 속에 내몰리는 파편 같은 부끄러움

내가 아닌데 내가 부끄럽다

세상의 곳곳에는 눈뜬 아귀들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화통 같은 더위를 먹고 있는데

천국의 이면에는 거짓과 욕망의 배수로를

끊어내고 있었다

늘 화려한 도둑촌이 존재한다는데 이 땅에,

소녀의

꿈은 이어도였다


배고픈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땅의 배면에는

나비가 날고 꽃들이 제 무게를 견디며

피어 있을까


2016.8.24


여전히 변함없는 오늘이다.


시집 《봄길,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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